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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양절 그리움 뒤에 담긴 회귀의 의미

청풍(淸風)

【정견망】

홀로 이향에서 나그네 신세가 되었으니,
명절을 맞을 때마다 친족이 더욱 그리워라.
멀리서 형제들이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을 알겠고,
곳곳에 수유를 꽂는데 한 사람이 없네.

獨在異鄉爲異客
每逢佳節倍思親
遙知兄弟登高處
遍插茱萸少一人

이것은 왕유(王維)의 《구월구일 산동의 형제를 회억하다(九月九日憶山東兄弟)》로, 중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시다. 많은 사람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낭송하곤 한다. 전체 시의 언어가 평이하고 자연스러우며 감정이 진솔하고 감동적인데, 그중 “명절을 맞을 때마다 친족이 더욱 그리워라(每逢佳節倍思親)”라는 구절은 사람들이 명절날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천고의 명구가 되었다.

왕유는 후세 사람들에게 ‘시불(詩佛)’이라 불렸다. 그의 근기가 깊어 많은 작품이 맑고 그윽하며 심원(深遠)한 선의(禪意)를 담고 있다. 따라서 수련 문화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면, 이 시가 표현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 세상의 형제와 친족에 대한 그리움뿐만 아니라, 더 깊은 층차의 향수(鄕愁)—생명의 진정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본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소원—를 은은하게 기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이백(李白)의 “고개 들어 밝은 달을 바라보고, 고개 숙여 고향을 그리워하네(舉頭望明月,低頭思故鄉)”와 그 맥을 같이한다.

음력 9월 9일은 중양절(重陽節)이다. 중양절은 고대의 높은 곳에 올라(登高), 하늘과 조상에 제사(祭天祭祖)를 지내고, 복을 빌고 재앙을 물리치는 등의 전통이 융합된 날로, 천지신명에 대한 고대인들의 경외심을 담고 있다. 시인이 특별히 “구월구일(九月九日)”을 명시한 것도 전체 시가 일반적인 그리움의 감정을 넘어선 문화적 의미를 지니도록 만들었다.

“멀리서 형제들이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을 알겠네”에서 ‘높은 곳’은 표면적으로는 중양절에 등고(登高)하는 장소를 가리키지만, 더 깊은 층차에서 바라보면 고층 공간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여기서 ‘멀리 안다(遙知)’는 것은 평상시의 추측뿐만 아니라 아득한 거리를 뛰어넘는 인지를 내포하는 듯하다. 시인은 마치 멀리 있는 친족들이 등고하고 수유를 꽂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부재로 인해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 같다.

만약 이 그리움을 더 넓은 생명의 배경 속에 놓고 이해한다면, 그 ‘형제들’은 어쩌면 고층 공간에서 생명을 기다리는 친인들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고향을 떠나 인간 세상에 온 친인이 애초의 약속을 지켜 세속의 시련 속에서도 본성을 지켜내고, 마침내 수련을 성취해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리하여 “곳곳에 수유를 꽂는데 한 사람이 없네”가 표현하는 바는 명절 단란할 때 한 사람이 빠진 아쉬움에 그치지 않고, 고향의 친인들이 나그네의 귀환을 기다리는 절실한 기대감도 함께 담고 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회귀에 대한 갈망은 인류가 공통으로 지닌 감정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 그러하다. 대법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우리에게 사람의 생명은 고층 공간에서 왔으며, 그곳이야말로 생명의 진정한 고향임을 알려준다. 이런 의미에서 ‘회귀(回歸)’가 인류 문학에서 영원한 주제가 된 것은, 어쩌면 생명 깊은 곳에 진정한 고향에 대한 기억이 언제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문학에는 나그네의 향수와 떠돌이의 귀환 갈망을 묘사한 작품이 무수히 많다. 표면적으로 그것들은 인간 세상의 고토에 대한 그리움을 다루고 있지만, 더 깊은 층차에서는 생명이 본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반본귀진(返本歸真) 염원을 기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양 문학 또한 마찬가지여서, 영향력이 지대한 《오디세이아》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오디세우스는 오로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썼다. 머나먼 귀환길 속에서 그는 수많은 간난신고를 겪었으나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바람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수년간의 방황과 시련을 거쳐 그는 마침내 온갖 유혹과 시험을 이겨내고 고국에 돌아와 가족과 상봉했다. 《오디세이아》는 이로써 서양 문학 전통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를 다진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더 깊은 층차에서 바라보면 오디세우스의 귀환길은 단순히 지리적 의미의 고향 방문뿐만 아니라, 마치 일종의 생명 수련 여정과도 같다. 사람이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마찬가지로 온갖 시련을 겪고 내면의 두려움과 욕망을 이겨내며, 명리(名利)와 정욕(情慾) 등의 집착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자신의 본성을 점차 되찾고 마침내 본연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왕유의 시 속 ‘이향(異鄕)’은 단순히 고향을 떠난 타향(他鄕)일 뿐만 아니라 생명이 잠시 머무는 인간 세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며, ‘친족에 대한 그리움’은 단순히 인간 세상의 가족을 그리워하는 것을 넘어 생명 깊은 곳에서 진정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일 수도 있다.

“홀로 이향에서 나그네 신세가 되었으니,” 사람이 세상에 올 때 이향을 떠도는 나그네와 어찌 다르겠는가? 그리고 그 지워지지 않는 향수는 어쩌면 우리에게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잊지 말고, 마침내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도 잊지 말라고 일깨워주는 것일지 모른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3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