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清白)
【정견망】
천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만 길엔 사람 자취 끊어졌네.
외로운 배에 도롱이와 삿갓 쓴 늙은이,
홀로 추운 강 눈 속에서 낚시질하네.
千山鳥飛絕
萬徑人蹤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당대의 대시인 유종원(柳宗元)의 이 작품 《강설(江雪)》은 매우 유명하다. 《당시별재(唐詩別裁)》에서는 이 시를 두고 “맑고 예리한 것이 이미 으뜸이다(清峭已絕)”라고 하였고, 북송의 대문호 소동파는 “이는 필시 하늘이 부여한 것이라 미칠 수 없다(殆天所賦,不可及也)”며 더욱 부러워하고 찬탄했다.
후세에 시성(詩聖)으로 추앙받는 소동파는 시를 짓는 심경(心境)과 격국(格局)에서 이미 일반인과 비교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님에도, 그조차도 이 시를 하늘이 유종원에게 준 선물이라 찬탄하며 다른 사람은 비길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는 왜 이토록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일까?
오늘날 사람들이 이 시를 해석할 때 읽어내는 것은 일종의 “청고하고 고오한(清高孤傲)”, 세속과 더불어 더럽혀지지 않으며 높디높은 곳에 있는 깨끗하고 서늘한 시인의 이미지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만약 유종원 본인의 삶과 이 시를 결합해 함께 감상하고 읽어낼 수 있다면, 어째서 이 시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깊이 움직이고 천고에 유전될 수 있었는지, 어째서 이것을 하늘이 내린 시작(詩作)이라 말하는지 더 잘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다.
유종원은 어려서부터 신동(神童)이었으며, 사서 속에서는 그를 가리켜 “어려서부터 정밀하고 민첩함이 비할 데 없이 뛰어났고, 문장을 지음이 아주 웅대하며 정치(精緻)했다”라고 칭했다. 그리고 그는 불가(佛家)와 아주 깊은 선연(善緣)이 있었다. 유종원은 스스로 “나는 어릴 적부터 불법을 좋아했고 그 도를 추구한 지 30년이 되었다”라고 서술했다. 나중에 진사에 합격하여 막 자신의 재능을 펼치려 할 때 도리어 황량하고 먼 곳으로 유배되었고, 이후로 다시는 조정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강설》이란 작품은 바로 그가 유배 기간에 지은 것이다.
“천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만 길엔 사람 자취 끊어졌네.”
천 개의 산이 솟구치고 만 개의 길이 교차한다. ‘천(千)’이란 일반적인 시에서도 이미 큰 수인데, 그 뒤에 시인은 또 ‘만(萬)’ 자를 사용하여 즉시 광대하고 창원(蒼遠)한 천지를 그려냈다. 새의 활동은 주로 먹이를 찾는 것이고, 사람의 분주함도 대부분 명리와 욕망을 위한 것인데, 이것들이 모두 ‘무(無)’로 돌아가고 모든 것이 하얀 눈 아래에 가려질 때, 이 사이에 천지가 지닌 크고 넓음, 청명하고 깨끗함이 더욱 드러난다.
“외로운 배에 도롱이와 삿갓 쓴 늙은이,
홀로 추운 강 눈 속에서 낚시질하네.”
이 아득히 넓은 큰 눈 속에서, 늙은이는 도롱이를 입고 삿갓을 쓴 채 배를 타고 강 한가운데에서 홀로 낚시질한다. 이것은 어떠한 화면이며, 시인의 어떠한 심경을 보여주는가?
유종원은 일찍이 “부처의 도는 크고 많은 것을 포용한다. 무릇 물외(物外)에 뜻을 두고 세속에 제약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자는 곧 그리로 들어갈 것을 생각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뜻인즉 불법은 박대정심(博大精深)해서 만유(萬有)를 포용한다는 것이다. 무릇 물질적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뜻을 두고 세속의 속박이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불리(佛理)를 인정하고 불법(佛法)에 귀의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는 바로 그의 이러한 심경을 체현하고 있으니, 속세의 고통과 아득함 속에서 진을 지키고(守真), 선을 행하며(行善), 고생을 참아내어(忍苦), 한 단계씩 승화하고 한 층씩 내심의 맑고 깨끗함이 지닌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고하고 고오함’으로 유종원을 형용하는 것은 그다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내심의 맑고 깨끗함을 매우 중요하게 보았지만, 동시에 남을 위하는 선심(善心)을 품은 사람이었기에, 오만하지 차갑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당시 유종원과 유우석(劉禹錫)은 함께 유배되었는데, 유우석이 가는 곳이 더 열악해 그야말로 사람이 거주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연로하신 어머니가 집에 계셨으니, 만약 노모가 유배지로 따라간다면 그 노인은 큰 고생을 겪게 될 것이요, 만약 따라가지 않는다면 모자간은 이로부터 다시는 서로 만나기 어려울 터였다. 이에 유종원은 상소를 올려 유우석과 자리를 바꿔 달라고 요청했으니, 이러한 행위는 참으로 사람을 감복하게 만들었고, 그리하여 후에 유우석에게 다른 장소를 바꾸어 주어 두 사람 모두 그고난의 땅으로 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유종원이 유배된 곳은 유주(柳州 지금의 광서 장족자치구)였는데, 그는 간 후에 많은 선한 일을 하여 백성들에게 애대와 존경을 받았고, 그를 “유유주(柳柳州)”라 불렀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를 위해 사당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는 친히 많은 버드나무를 심었고, 또 유주성 서북쪽 모퉁이에 200그루의 좋은 품종의 귤나무를 심었다. 동시에 그 인품과 문장을 우러러보는 많은 학자가 찾아와 그를 접견했고, 그의 친히 지도를 받은 글방 선비들은 문장이 모두 크게 진보했으니, 이른바 “남방에서 진사가 되려는 자들이 수천 리를 달려와 유종원을 좇아 놀았다”라고 하였다.
유종원은 유주 현지의 가난한 사람들이 자주 집안의 자녀를 저당 잡혀 돈으로 바꾸고, 만약 저당 기간이 지나도 갚지 못하면 저당 잡힌 사람과 저당 잡으러 나선 사람 모두 노비로 전락함을 보았다. 이에 그는 어떻게든 방도를 내어 이 저당 잡힌 사람들을 구해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는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노동으로 저당 잡힌 돈을 대신하게 했고, 집안사람이 이미 죽은 경우에는 자신이 직접 돈을 내어 그 저당 잡힌 사람들을 구출하여 노비로 전락하는 것을 면하게 했다.
유종원과 같이 덕과 재능을 겸비한 사람이 걸은 것은 인간 세상의 명리장(名利場)이 아니라, 고통을 참아내고 선을 닦아 반본귀진(返本歸真)하는 길이었기에, 그렇기에 이러한 초탈한 시작을 지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강설》 작품 속의 추위는 정(情) 속의 차갑고 따뜻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인위적인 청고함도 아니라, 일종의 “높은 곳은 추위를 견디기 어렵다(高處不勝寒)”라는 것이니, 생명의 경지가 승화할 때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그리되는 것이다.
진정으로 고난을 맞이했을 때 도리어 자신의 마음의 경지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은 일반인이 해낼 수 있고 견뎌낼 수 있는 바가 아니며, 그것이 어떠한 심경인지, 그 ‘높은 곳’에서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시 속에서, 유옹(柳翁)이 “홀로 추운 강 눈 속에서 낚시질하네”의 유연함과 정력(定力) 속에서, 우리는 한 수련자의 심경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