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편집자의 말:7월15~16일 워싱턴DC 法輪大法협회 주최로 “견인불굴의 정신”이라는 주제의 예술전람회가 미국 수도 워싱턴에 있는 하원 의원회관인 레이번 하우스 전시회장에서 정식으로 열렸다. 이번에 전람회에 참가한 작품은 모두 파룬궁 수련생들이 창작한 것으로 그들 중에는 아직도 불법으로 감금되어 감옥에 있는 사람도 있다.
5년의 피비린내 나는 탄압을 겪으면서 이 예술가 수련생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세인들에게 파룬궁을 수련한 후에 인심(人心)이 바르게 잡힌 즐거움, 파룬궁 수련생들이 혹독한 시달림과 피비린내 나는 탄압 하에서 표현해 낸 견인불굴의 꺽을 수 없는 정념, 眞善忍 우주 진리에 대한 끊어버릴 수 없는 추구에서부터 정의는 끝내 사악을 이긴다는 믿음에 이르기까지를 표현해 내고자 하였다.
이 예술가들은 각자 특징이 있으며, 그들은 힘써 전통 회화기법을 이용하여 이 목적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우리는 여러분들에게 전람회에 참가한 각 화가들의 작품과 이 작품들의 구상, 창작과정 및 사용한 기법 등을 연속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왕즈핑(王志平) 인터뷰
※다음 문장에서 기자는 정견 기자 주칭밍(朱清明)을 말하고 왕은 화가 왕즈핑을 가리킨다.
기자 : 왕즈핑 선생님, 당신의 미술창작 경력을 좀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왕 : 저는 어려서부터 미술을 좋아했습니다.
기자 : 몇 살때부터 미술을 시작하셨나요?
왕 :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시간 만 되면 아주 즐겁고 흥분이 되었습니다. 중학교 삼학년 무렵, 즉 16~7세 무렵부터 기본기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기자 : 미술 수업을 받으셨나요 아니면 따로 선생님을 모셨나요?
왕 : 시에서 운영하던 미술반에서 배웠습니다. 한 일이년 정도 하고 나니 미술 대학에 가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루쉰(鲁迅) 예술대학에 진학해서 조각을 전공했습니다. 학교에서 5년을 배운 후에 졸업을 하고 대학에서 미술 교육을 담당했습니다.
기자 : 이 기간에 스스로 만족할 만한 작품이 있습니까?
왕 : 없습니다. 저는 줄곧 예술에 대해 집착하고 있었고 아주 좋아했지만, 예술의 변이(變異)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가령 피카소와 인상파의 작품이 아주 수준이 높다고 보았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떠받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류의 작품을 만들어 내지는 못했습니다. 고전적인 것, 가령 유럽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대가들의 작품에 대해서는 벌어진 차이가 너무 멀어서 도저히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런 일종의 모순 상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술을 너무 좋아해서 이런 상태로 20년을 지속해 왔습니다.
기자 : 어떻게 법을 얻으셨나요?
왕 : 저는 96년에 미국에 왔고 제 집사람은 10개월 뒤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막 미국에 왔을 때 생활이 어려웠고 아주 거대한 압력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생활도 침체되어 있었고 미래가 불투명했습니다. 아내가 자신도 읽어보지 않은『전법륜』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중국 제자에게 받은 것이었죠. 아내는 제가 기공에 아주 흥미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중국에 고인(高人)이 나타났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렇다면 한번 보자, 이렇게 해서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보고 난 후에 아주 흥분되었고 즐거웠으며 참 잘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요구가 너무 높아서 저로서는 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과거 20년간 받은 오염과 변이가 너무 커서 자신은 할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이지요. 그러나 행동이나 말투에서 아주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전 같으면 아주 거칠게 말을 했을텐데 사부님께서 저를 관할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아주 좋아졌습니다.
그렇지만 완전히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는 할 수 없었습니다. 서양 예술 중의 유명한 대가들은 모두 『성경(聖經)』 중의 소재를 가지고 표현을 했습니다. 당시는 신(神)에 대한 믿음이 있던 시대였기 때문이지요. 그때에 주변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저는 아주 호의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유럽 명화(名畵)들에 나오는 장면이 모두 성경 중의 것이었기에 성경책을 접수하기가 쉬웠기 때문이지요.
제가 진정으로 법을 얻게 된 것은 99년 사부님께서 뉴욕에서 설법하실 때였습니다. 저도 참가를 했었는데, 내심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을 받았고 수련을 시작하기로 맹서했습니다.
기자 : 수련을 하신 후에도 창작을 하셨습니까?
왕 : 98년에 저는 조각에 초서(草書)를 새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법을 얻은 후에는 대법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겨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기자 : 그러면 이번 전시회에 참가하신 작품 시리즈가 대법을 수련하신 이후 최초의 창작인가요?
왕 : 예, 시리즈물로는 이것이 최초입니다. 사실은 제가 미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체계적으로 창작한 최초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 이 그림들을 창작하실 구상은 어디서 얻으셨나요?
왕 : 저는 대법을 수련하므로 우선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원래의 좋지 못한 것들을 전부 포기해야 합니다. 사부님의 설법으로부터 저는 인류의 예술 준칙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으며, 고전화 대가들의 작품을 통해 풍부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예술가들의 신(神)에 대한 존경과 신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가지 일에 아주 몰두했으며 현대 사회의 이런 물욕(物慾)이나 정욕(情慾)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추구해야 할 경지임을 알게되었습니다. 왜 이런 박해를 그려야 하는가? 제가 5~6년간 수련하면서 저는 眞善忍이 인류를 반본귀진하게 할 수 있음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사람마다 모두 사회를 원망하지만 사실은 자신도 좋지 않은 것들을 추동해 왔음을 모릅니다.
저는 지금 아주 분명하게 제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이런 좋은 사람들이 박해받고 있기에, 제 내심(內心)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표현으로 이번 박해를 표현해 내는 것은 도의상 저버릴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제 수련의 한 부분입니다.
기자 :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다른 작가들 중에도 박해를 그린 분이 계신데, 당신께선 박해 중에서도 혹형을 소재로 시리즈 회화를 제작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이런 시리즈를 그릴 생각을 하셨는지요?
왕 :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또한 대법제자들이 박해받은 잔혹한 사실을 예술적인 언어로 진실하게 표현하고자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표면적인 것을 그리는데 그쳐서는 안 되면 사악의 박해를 분명하게 폭로해 내야 합니다. 이 수련인들은 생사(生死)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얻었기 때문에 자신의 양심을 위배할 수 없으며, 자신의 믿음을 배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런 심정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문장발표 : 2004년 8월 1일
문장분류 : 【정견뉴스】
영문위치 : http://www.pureinsight.org/pi/articles/2004/8/16/2481.html
중문위치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04/8/1/284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