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뉴스】
2009년은 그녀의 인생이 바뀐 해다. 당시 그녀는 28세였다. 시원하고 소탈해서 한번 보면 잊지 못할 미녀였다.
28, 9세에 부모님의 눈에 그녀는 이미 노처녀였다. 부모님의 압력 때문에 그녀는 끊임없이 선을 보았고 어렵사리 남자친구를 하나 사귀었다. 1년 이상 사귀었지만 남자친구는 그녀를 데리고 부모님을 뵈러 가지 않았다. ‘나는 나이 때문에 그와 소비할 시간이 없다. 부모님은 또 결혼하라고 조르시는데.’라고 생각한 그녀는 다른 방법을 하나 생각했는데 바로 외국에 나가는 길이었다.
그는 멋지게 생겼고 얼굴형은 한류 드라마에 나오는 탤런트처럼 잘 생겼다. 또 한국 어느 의료기기 회사의 재무담당이었다. 사장을 도와 일하는 동안에 늘 사람이 앞뒤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상황이 아주 좋았다. 그는 업무 때문에 늘 중국출장을 가야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욱 큰 계획이 있었는데 빨리 중국 여자를 찾아 결혼하는 일이었다.
연분은 어찌 된 일인지 누가 알았으랴!
소개를 통해 한국 미남과 중국 처녀는 장춘 승리공원에서 만났다. 그날 하얀 원피스를 입은 그녀의 모습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한국의 대학동창 같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이후 주로 이메일이나 국제전화로 연락했는데 영어, 중국어, 때로는 약간의 한국어로 교류했다.
2009년 연말 두 사람은 번개같이 결혼했으며 결혼 증명서 등 일체 수속을 다 처리했다. 섭란(聶蘭 녜란)은 그저 한국에 갈 날만 기다렸다.
그녀는 기쁨 속에 머리가 혼미하여 앞으로 어떤 길이 펼쳐져 있는지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천당에서 지옥으로
2010년 1월 1일 신혼부부는 한국에 도착했다.
섭란은 새 집, 새 가구, 이불 등 모든 것이 새것이고 심지어 신부측에 줄 예물까지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고민했다. 두 사람의 한국에서의 혼례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혼례는 몇 달 후에나 거행될 예정이었다.
남편은 이것들은 이미 1년 전에 준비된 것이라고 했다. 예전 여자 친구와 최근에 헤어졌는데 그녀가 도망쳐버려 혼사가 깨졌던 것이다.
파탄의 원인을 남편은 말해주지 않았는데 나중에 추측해보니 아마도 시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자기 이모가 미국에 있는데 돈이 아주 많고 많은 체인점을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1990년대에 이미 침대와 TV가 딸린 럭셔리 차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이 없어 자신을 양자로 들여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가 결혼하려는 목적은 바로 이모의 유산을 받으려는 것이었다.
그 이모는 곧 미국에서 섭란을 보러 한국에 왔다. 이모는 야무지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휠체어를 타야 했다.
두 사람은 한번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보모를 구하려 했고 그리고 나서 자신의 유산을 상속할 사람을 찾으려 했습니다. 내 생각에 유산을 상속한 후 남편에게는 이혼할 마음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속인의 책략이란게 그렇죠.” 직감적으로 불안감을 느낀 그녀는 이 유산 상속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편은 직접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면서 “만약 네가 동의하지 않으면 곧 이혼이다.”라고 했다.
“저는 몹시 울었고 마음이 너무 괴로웠어요.” 남편이 세상을 우습게 보는 태도에 후회했고 자기가 불구덩이에 뛰어든 것 같았다. “우리는 별다른 감정이 없었는데 바로 결혼했어요.”
한번은 남편과 시어머니가 그녀와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나더러 귀국하라고 했어요. 그들은 20만 위안을 주면서 나더러 인정하고 이혼하자는 거였어요,”
그녀는 필사적으로 나왔다. “저는 칼을 들고 말 했어요. 당신 앞에서 죽을지언정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부모님을 볼 면목이 없어요.”
그녀의 태도는 남편을 어쩔 수 없게 했다. 시어머니도 그녀에게 불만과 원망이 가득했다. 예정된 혼례도 취소되었다. 3사람의 관계는 이렇게 들끓었다.
“저는 아주 고통스러웠고 나중에 남편에게 출장 갈 때 같이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어요.” 하지만 남편은 그녀의 처지는 전혀 생각해주지 않았고 시어머니도 그런 식이었다. 그녀는 매일 악몽을 꾸었고 심신이 극도로 피곤해졌다.
그녀가 장춘 친정에 전화를 하면 부친은 늘 묻곤 했다. “네 남편이 돈이 얼마나 있니?”
“중국으로 돌아가자니 돌아갈 수 없고 한국에 있자니 어떻게 살아야 할 줄 모르고 매일 자살만 생각했어요. 하지만 또 살고 싶었어요. 당시 심연으로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임신 기간에 그녀는 매일 침대 맡에 앉아서 울었고 눈물을 흘려 눈이 퉁퉁 부었다. 남편도 마음이 편치 않아 그녀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결혼 생활이 불안하니 그녀는 이 아이를 떼버릴까 생각했다. 남편이 말했다. “만일 아이가 없으면 결혼도 끝장이야.”
암암리에 어떤 신비한 힘이 그녀를 보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앉아서 울 때 관세음보살을 볼 수 있었어요. 저는 속으로 ‘당신이 나를 보지만 나를 도와줄 수 없다면 나를 봐서는 무슨 소용이 있어요.’라고 생각했어요.”
중국으로 돌아가다
태아를 위해 두 사람은 중국으로 돌아갈 것을 의론했다. 남편은 그때 마침 대련 동북 재경대학에 다닐 기회가 있었다. 2011년 1월 5일 두 사람은 대련에 도착했다.
하지만 한 달도 안 되어 남편은 어머니와 함께 연말을 보낸다면서 한국으로 돌아갔다.
남편은 간다는 말만 하고 곧장 가버렸다. 섭란은 혼자 임신 8개월 된 상태로 대련에서 새해를 맞아야 했다. 남편은 전화를 걸어 “당신 혼자 마트에 가서 사 먹어.”라고 했다.
“저는 꽤 강한 사람이에요. 속으로 그에게 아무 기대도 안했어요. 직접 만두 20개를 만들어 연말을 보냈죠.”
2011년 3월 25일 섭란은 출산을 위해 대련 산부인과 병원에 들어갔고 남편도 돌아왔다.
분만실에 들어오기 전에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의사가 그녀에게 말했다. “아이의 심장에 문제가 있습니다.” 의사는 서약서를 쓰라고 했는데 만약 아이가 태어나다 죽어도 자신들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섭란은 남편에게 분만실에 들어오라고 했다. “저는 남편에게 아이 낳은 과정을 보라고 했어요. 만약 태어날 때 정말 죽거나 혹은 어떻게 될지 몰라서 저를 원망하지 않게 하려고요.”
“출산하는데 열몇 시간을 고생했어요. 당시 그런 고통은 게다가 심리적인 고통에 사람이 거의 붕괴될 뻔 했어요.”
“당시 저는 인생이 무상함을 느꼈고 많은 것을 비교할 수 없으며 많은 마음을 내려놓았어요.”
다행히 아이는 순산했고 눈동자가 또렷했다. 하지만 아이가 작고 새까맣고 비쩍 말라서 뼈다귀 같았다. 같은 방의 다른 부인이 낳은 아이는 하얗고 통통했다.
아이를 낳자 부부 두 사람 관계가 좀 좋아졌다. 시어머니도 아이를 보러 왔다.
문이 그녀를 향해 열리다.
2013년 섭란의 남편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혼자서 대련에서 아이를 키웠다. 집에는 한국 위성 TV를 설치해 놓았는데 남편이 그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한국 위성 TV를 설치해 놓으니 국내의 TV를 설치할 수 없었다. 그녀는 본래 TV를 별로 보기 좋아하지 않았으나 집에 사람이 없으므로 할 수 없이 기분 전환 삼아 날마다 보았다.
한국 위성 TV를 통해 섭란은 신당인 TV를 보았고 반년 이상 보니 평공산당이 반복적으로 방영되었고 또 한류 드라마와 다른 프로그램이 있었다. “신당인 TV를 보니 사회자의 기질이 보통이 아니었어요. 일반인 같지 않았어요.”
나중에 그녀는 장천량(章天亮 장톈량)이 진행하는 역사 프로그램 《/span>소담풍운笑谈风云석도평술石涛评述을 보았다.
장천량은 역사를 말했다. 그는 백리해를 말했는데 백리해는 나중에 재상이 되었다. 그가 나가서 유랑하기 전 집안에 땔감이 없어서 아내는 당시 문을 부수어 땔감으로 삼아 남편의 밥을 해주었다.
나중에 아내는 다른 사람의 빨래를 해주며 살았다. 나중에 그녀는 백리해를 찾아갔는데 백리해는 여러 사람 앞에서 다 떨어진 옷을 입은 아내를 알아보았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옛사람들이 정말 선량함에 감탄했어요. 지금 결혼에 어디 그런 게 있나요.”
프로그램의 마지막에는 장천량이 끝마칠 때 말했다. “저의 사부님은 알려주시길 어떤 사람이 당신이 좋다고 해도 당신이 반드시 좋은 사람이 아니며 어떤 사람이 당신을 나쁘다 해도 당신이 반드시 나쁜 사람이 아니다.” “진선인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 (파룬궁 창시인 이홍지 선생의 저서 《/span>전법륜에서 인용)
“나는 그 말을 듣자 눈물이 흘러 내렸어요, 이 말이 단번에 제 머릿속에 박혔어요.”
“이 사람이 이렇게 재능이 있으니 그의 사부님은 얼마나 높을까. 아울러 석도라는 사람 역시 사부가 있다고 했어요. 나는 당시 또 눈물을 흘리고 감탄했어요.”
“《/span>전법륜이란 세 글자를 듣고 나는 내가 이 책을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도대체 어떤 책인지.”
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