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德惠)
【정견망】
북송 인종(仁宗) 연간에 내주(萊州)에 서(徐) 씨 성을 가진 관리가 있었다. 기록에는 그의 이름이 남지 않았고, 다만 그가 나중에 맡았던 최고 관직이 낭중이라 ‘서랑중(徐郞中)’으로 불렸다.
서랑중은 20세 때 아버지를 따라 영외(嶺外)로 갔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오령(五嶺) 이남에서 지방관의 직무를 대행하고 있었다. 오령이란 통상 대유령(大庾嶺), 기전령(騎田嶺), 월성령(越城嶺), 맹저령(萌渚嶺)과 도방령(都龐嶺)을 가리키는데, 옛사람들은 오령 이남 지역을 ‘영외’라고 불렀다. 당시의 교통과 생활 여건 속에서 이곳은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늘 오지로 여겨졌다.
송 진종 건흥 원년, 즉 1022년에 송 인종이 즉위했다. 각지에서 잇달아 축하 예물을 바치며 새 군주의 등극을 경축했다. 서랑중은 명을 받아 축하 예물을 호송하고 경성으로 향하던 중 도중에 무릉(武陵)의 한 역전에 이르렀다.
그는 역전의 정침(正寢), 즉 역전에서 가장 좋은 방에 투숙하려고 했다. 역졸이 서둘러 말리며 만류했다. “이 방에는 괴이한 것들이 자주 오고 가 감히 머무는 사람이 없습니다. 원컨대 다른 방으로 바꾸시지요.”
서랑중은 당시 젊고 기운이 넘쳐 역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정침을 떠나 청사(廳堂)의 병풍 뒤로 거처를 옮겨 잠을 청했다.
한밤중이 되었을 때, 그는 기이한 꿈을 꾸었다.
꿈에 한 신인이 나타났는데 몸치가 아주 헌걸차고 용모가 위엄이 있었으며, 손에는 대나무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서랑중이 자세히 살펴보니 바구니 안에 담긴 것은 뜻밖에도 모두 사람의 코였다.
신인이 호통을 치며 꾸짖었다.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감히 멋대로 여기에 머물러 나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냐?”
서랑중은 매우 두려워하며 급히 사죄했다. 이를 통해 볼 때 그 방은 단순히 ‘귀신이 나오는 곳’이 아니라, 다른 공간의 존재들이 오고 가는 통로에 위치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그곳에 살면 마침내 신인(神人)의 앞길을 가로막게 되는 셈이었다.
신인은 서랑중을 한참 동안 빤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관상은 박복하지 않으나 코가 굽어 아래로 처져 있으니 반듯하지 못하구나. 내가 너를 위해 바꾸어 주겠다.”
말을 마치고는 신인이 대나무 바구니에서 코 하나를 골라내어, 먼저 서랑중의 원래 코를 베어내어 내던지고 고른 코를 붙였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이용해 코의 사방 주변을 꾹꾹 눌러 단단히 고정했다.
이 전 과정에서 서랑중은 꿈속에서도 코 부위에서 밀려오는 통증을 선명하게 느꼈다.
신인은 이 모든 일을 끝마치고는 다시 살펴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참으로 훌륭한 정랑비(正郞鼻)로구나!”
이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정랑비’는 겉으로는 코 모양이 반듯하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서랑중이 훗날 정식으로 랑관(郞官)이 될 것임을 미리 예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서랑중은 꿈에서 깨어난 후 자신의 코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의 원래 콧대는 진실로 껑충하고 반듯하지 못했는데, 꿈속에서 신인에게 코를 바꾼 뒤로는 코 모양이 절로 변하여 반듯하고 곧아졌다.
후에 서랑중은 과연 관직에 나아가 승진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가부랑중(駕部郞中)에 이르렀고, 조정의 중앙 랑관이 되었다. 가부는 병부 소속 기관 중 하나로 수레와 말과 관련된 사무를 담당했다.
서랑중은 나중에 이 직위에서 퇴직하여 아들 서삭(徐朔)을 따라 유양(維揚)에 거주했다. 서삭은 당시 첨판(簽判)으로 재직 중이었으며 관직은 비서승(秘書丞)이었다. 송 영종 치평 4년, 즉 1067년에 서랑중이 세상을 떠났다.
이 이야기가 가장 음미할 만한 대목은 서랑중의 관상과 운명이 동시에 변화를 겪었다는 점이다.
신인이 다른 공간에서 그의 코를 대신 바꾸어주자, 이후 인간 세상의 육신 역시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서서히 나타났고, 신인이 말한 ‘정랑비’는 나중에 그의 벼슬길에서도 그대로 응험해 그는 과연 낭중에 이르렀다.
중국 전통문화에서는 사람의 운명이 우연히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전생의 인과와 안배가 있다고 여긴다. 사람의 관상, 손금, 뼈의 생김새나 심지어 신체의 특정 특징은 대개 그의 성격, 복록, 인생의 기우(기회와 조우)와 서로 상응한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이 외모를 통해 한 사람의 운명 흐름을 관찰하는 관상술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겉모습만으로 사람의 좋고 나쁨을 간단히 단정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의 신체, 원신, 운명 사이에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연계가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다른 공간에서의 신체에 변화가 생길 때, 인간 세상의 신체와 운명 역시 그에 따라 변화를 겪을 수 있다.
《괄이지(括異志)》에 기록된 이 이야기는 바로 전형적인 예시이다. 다른 공간에서 코를 바꾸니 인간 세상의 코 모양이 그에 따라 변하였고, 관상이 바뀐 뒤에는 원래의 운명 안배마저 변화했던 것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더욱 엄숙한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한 서약 역시 다른 공간에 흔적을 남기며, 생명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
일부 수련인들이 목격한 다른 공간의 풍경으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공산당의 당·단·대 조직 가입을 선서할 때, 특히 “공산주의를 위해 평생을 분투하겠다”, “언제든지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등의 서약을 말할 때, 다른 공간의 신체 역시 변화가 생기며 생명은 공산 사령(邪靈)에 속한다는 그것의 인장이 찍히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어릴 때 소선대, 공청단에 가입하거나 후에 공산당에 가입하는 것이 그저 일종의 사회적 절차를 밟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길지도 모르며, 어떤 이들은 당시에 했던 서약을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서약은 사람이 잊었다고 해서 저절로 효력을 잃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진심을 담아 탈퇴를 표명하는 것은, 바로 마음속으로부터 그 사악한 조직을 부정하고 자신의 생명을 더 이상 그곳에 맡기지 않는 것이다. 수련계의 인식에 따르자면, 하늘 역시 이 때문에 그 사람이 다른 공간에서 사악의 낙인을 지워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 그 생명이 더 이상 공산 사당과 연계되지 않게 한다.
당·단·대 탈퇴는 단순히 인간 세상의 한마디 표명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명을 위해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죄업이 극심한 조직과 계속 묶여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것의 통제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로운 생명이 될 것인가?
《괄이지》에서 신인이 서랑중의 굽은 코를 바꾸어 그에게 ‘정랑비’를 달아주자 그의 관상과 운명이 그에 따라 변했던 것처럼, 이 이야기는 어쩌면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점을 일깨워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공간에서 발생한 변화는 인간 세상의 운명과 직접적으로 연계될 수 있으며, 사람의 진실한 선택 역시 생명의 미래 향방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관건적인 순간에 공산당의 당·단·대 조직을 탈퇴하고 일찍이 맺었던 서약을 해제하는 것은 바로 스스로를 위해 미래를 선택하는 일이다. 장차 하늘이 공산당을 소멸할 때가 되면, 그것의 사악한 낙인에 연루되지 않고 재난을 피하며 평안을 지킬 수 있다.
자료 출처
송(宋)·장사정(張師正) 《괄이지(括異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