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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연소 전기】 기반석의 바둑 대결과 세 대 화살로 요병을 물리쳐

앙악

【정견망】

바둑은 ‘금기서화(琴棋書畫)’ 사예(四藝) 중 하나로, 전설에 따르면 상고 시대 성왕인 요임금이 아들 단주의 거친 성정을 다스리기 위해 발명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이 기예는 화하(華夏) 지역에서 널리 유행하며 점차 ‘혁도(弈道)’라는 수련 문화를 발전시켰다. 동한의 사학자 반고(班固)는 그의 저서 《혁지(弈旨)》에서 네 가지 혁도의 수양 경지를 열거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도 많은 제왕장상(帝王將相)과 문인아사(文人雅士)들이 바둑으로 지혜를 겨룬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북경 향산 근처의 타응와(打鷹窪) 정상에는 기반석[棋盤石 바둑판 바위]가 하나 있다. 이 바위는 단순히 천연 바둑판처럼 생겼을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얽힌 이야기도 범상치 않다. 북송의 명장 양연소(楊延昭)가 요나라 장수 한창(韓昌)과 이곳에서 바둑을 두며 지혜를 겨루었는데, 결국 양연소가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이겨내고 요나라의 천군만마를 성공적으로 퇴각시켰다는 전설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한창은 양연소와 송군에게 여러 차례 패한 후 지략으로 이기기로 결심했다. 그는 서신을 써서 사신을 송나라 진영으로 보내, 다음 달 초사흘에 타응와에서 만나 국경 획정 문제를 논의하자고 양연소에게 제안했다.

요나라 사신이 서신을 가지고 도착했을 때, 양연소는 막 군사 훈련을 마치고 병법서를 읽으며 바둑 기보를 놓고 있었다. 양연소는 편지를 읽은 뒤 사신을 객점에 잠시 머물게 하고, 심복 장수들을 불러 대응책을 논의했다. 맹량(孟良)과 초찬(焦贊)은 요나라의 이번 행보에 속임수가 있다며 부임에 반대했으나, 악승(岳勝)과 양흥(楊興)은 역공을 펼쳐 한창을 잡을 기회라고 여겼다.

논의 끝에 양연소는 약속 장소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요나라 사신에게 전했다.

“한창이 바둑에 정통하다고 들었으니 이번에는 문(文)으로 겨루자! 현장에는 양측 모두 수행 병사를 백 명까지만 대동하며 바둑으로 승부를 결정하자. 만약 그가 나를 이기면 화살 한 대가 날아간 거리만큼의 땅을 내어줄 것이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음 달 초사흘에 반드시 나갈 것이니 그가 약속을 엄수하기만을 바란다.”

사신이 돌아가 양연소의 말을 전하자 한창은 기뻐하며 말했다.

“양육랑(楊六郎)이 이번에는 제대로 걸려들었구나. 이 바둑은 네가 이기든 지든 내가 너를 사로잡고 말 것이다!”

기반석에서 지략 대결

약속한 날이 다가오자 한창은 천 명의 장병을 기반석 근처에 매복시켰다. 또한 대장 야율휴가(耶律休哥)를 불러 근처 십여 리 안의 여러 진영에 수만 명의 중병을 배치해 양씨 가문의 장병들을 일망타진할 준비를 마쳤다. 한편 양연소 역시 약속에 응한 뒤 즉시 장수들과 배치 전략을 연구했다. 약속된 날이 임박하자 그는 양흥에게 수비를 맡기고 맹량, 초찬, 악승 등을 데리고 출발했다.

초사흘 당일, 향산 타응와 꼭대기에는 햇살이 눈부시고 하늘은 청명했다. 양연소는 일찍 바둑판 바위에 도착해 한창을 기다렸다. 곧이어 한창이 도착했는데, 단지 몇 명의 수행원만 대동하고 있었다.

양연소는 군례(軍禮)로 한창을 맞이하며 인사를 건넸다.

“지난번에 화살 세 대를 연달아 쏘았을 때는 한꺼번에 너무 많이 양보한다고 불평하더니, 이번에는 똑같이 세 대를 쏘되 그중 한 대의 거리만큼만 땅을 취하기로 했으니 약속을 지키길 바라오. 이번에는 문으로 겨루는 것이니, 이 시합 이후 송과 요 양측이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기를 바라오.”

한창이 연달아 동의를 표했다.

말을 마친 두 사람은 바둑판 바위 위에 판을 벌였다. 양연소는 백돌, 한창이 흑돌을 잡았으며 한창이 먼저 수를 두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양측이 여러 차례 탐색전을 벌이다가, 이후 치열한 공방을 주고받으며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국이 이어졌다.

명 방정양(方正陽)의 《고사하기(高士下棋)》. (공유 영역)

양연소가 말했다.

“한창, 그대가 바둑에 정통하다는 것이 헛소문인 줄 알았더니 정말 실력이 대단하구려. 수마다 압박이 심해 상대방이 숨 쉴 틈조차 주지 않는군.”

한창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요나라 안에서 오직 태후마마만이 나와 대등하게 겨룰 뿐, 나머지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하오.”

두 사람의 공방이 계속되던 중 수십 수가 지나자 한창이 이미 많은 백돌을 따내며 포위망을 형성했다. 한창이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양연소, 이곳은 타응와라고 불리니 사냥꾼이 매를 잡을 때 매둥지 근처에 쥐를 넣은 철망을 미끼로 두지. 매가 쥐를 잡으러 오면 반드시 철망에 엉켜 움직일 수 없게 되네. 자네는 지금 저 매처럼 함정에 빠져 날개가 있어도 날지 못하는 형국이니 순순히 항복하는 게 어떤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근처 여러 고갯길에서 수많은 요나라 군기가 나타났고, 여러 갈래의 요군이 서서히 이 산봉우리를 향해 접근해 왔다.

화살 세 대로 요병을 물리치다

그러나 양연소는 여전히 태연자약하게 바둑을 두며 말했다.

“한창,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겠소. 전국 시대의 명기사인 혁추(弈秋)가 한 번은 두 사람에게 바둑을 가르쳤다오. 한 사람은 오로지 배움에 전념해 혁추의 가르침만 들었으나, 다른 한 사람은 듣기는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자꾸 큰 새가 날아올 것이라 생각하며 활을 쏘아 맞힐 궁리만 했지. 두 사람이 똑같이 바둑을 배웠지만 뒤의 사람 실력이 앞의 사람만 못한 것이 그의 총명함이 남보다 못해서겠소? 당연히 아니지! 자네 역시 나와 바둑을 두면서도 마음이 한곳에 있지 않고 편법으로 승리할 생각만 하고 있으니, 눈앞의 승리만 볼 뿐 이미 패색이 짙어진 줄은 모르는구려!” 양연소는 말을 하며 또 몇 수를 두었다.

한창이 대답했다.

“죽음이 임박했는데도 입만 살았구나. 내가 대승하는 것을 보아라.”

그는 이어서 몇 수를 더 두었으나, 두면 둘수록 점차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전에 앞서가던 형세가 서서히 역전되어 공략했던 수들이 오히려 하나둘 포위망에 갇히기 시작했다. 한창은 전세를 뒤집으려 애썼으나 바둑판은 이미 거의 다 찼고 종국에 가까워졌다. 갈 수 있는 길은 점점 줄어들었고, 계산을 해보니 어떤 수를 두어도 결국 2~3집 차이로 지게 되는 형국이었다.

양연소가 말했다.

“한창, 이쯤에서 항복하시게! 자네의 계략은 이미 내가 간파했소.“

그러나 한창은 불복하며 말했다.

“누가 죽을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다!”

그는 즉시 장병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 양연소가 악승에게 깃발을 휘두르게 하자, 동·서·남 세 방향 고갯길의 요군이 이미 맹량과 초찬의 부대에게 가로막혀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요군 부대의 절반이 오히려 송군 편으로 돌아서서 요군의 진영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것이었다.

양연소의 병력이 요병을 크게 격파하다. 《수상남북송지전(繡像南北宋志傳)》 삽화. (공유 영역)

알고 보니 배신한 요군 부대는 이전에 전쟁에서 패해 송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석방된 장병들이었다. 그들은 이미 끊이지 않는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고, 송나라 진영에 머물며 문명적인 교화를 받아 마음속으로 양연소와 양씨 가문 장수들의 풍모를 동경해 왔다. 그리하여 맹량과 초찬의 회유를 받아 결정적인 순간에 전세를 뒤집은 것이었다.

양연소가 다시 말했다.

“한창, 자네가 만약 정도를 걷고 약속을 엄수했다면 나를 이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을 것이오! 그러나 자네는 거짓을 말하고 신의를 저버렸으니 실패는 필연적이며, 이 바둑은 내가 이겼소.”

말을 마친 양연소가 활을 당겼다. 그가 두 팔을 힘껏 당기자 활이 보름달처럼 굽었고, ‘슈욱, 슈욱, 슈욱’ 소리와 함께 화살 세 대가 날아갔다. 각각 수 리를 날아간 첫 번째와 두 번째 화살은 전·후사간촌(沙澗村)에 떨어졌고, 세 번째 화살은 더 멀리 백호간촌(白虎澗村) 앞의 큰 바위에 깊숙이 박혔다.

한창은 그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며 생각했다. ‘저 세 곳은 야율휴가의 군영이 매복해 있던 곳이 아니던가? 설마 양연소가 이미 내 계책을 꿰뚫고 있었단 말인가?’ 그는 이 매복병 중에서도 혹시 포섭된 자들이 있어 교전 시에 배신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때 남쪽 수십 리 밖 도로에서 자욱한 먼지가 일고 조수들이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송나라 조정의 대규모 원군이 빠르게 접근하는 듯했으며 그 수가 수만 명에 달해 보였다.

양연소가 말했다.

“한창! 협상이 결렬되었으니 이제 전장에서 계속 싸울 준비가 되었는가?”

한창은 계책이 실패했음을 깨닫고 여러 번 생각한 끝에, 현재 형세로는 정면 대결을 해도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분한 마음을 억누르며 군대를 거두어 물러갔다.

양연소는 요병이 물러가는 것을 보고 부대를 이끌고 후원군과 합류해 영지로 돌아왔다. 사실 그 원군은 양흥이 보낸 마중 부대였다. 그는 양연소의 분부대로 말 뒤편에 특수 장치를 매달아 이동 경로에 엄청난 먼지를 일으켜, 수천 명에 불과한 병력이 멀리서 볼 때 수만 대군처럼 보이게 했던 것이다.

양연소가 타응와에 데려간 장병은 요군에서 투항한 이들을 제외하면 백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상대가 속임수를 쓸 것임을 알면서도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실천하며 수행 병사를 백 명 넘게 대동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엄수했다.

참고사료:
《楊家將穆桂英傳說》北京美術攝影出版社 2015年出版 高雪松 搜集整理
《楊家府世代忠勇通俗演義》明朝 佚名 著 秦淮墨客校閱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