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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오천년〗 유라시아 교류를 확대한 통일 왕조 원조(元朝) (5)

(1206년—1368년)

심연(心緣)

【정견망】

문학 및 사학 편

문학

원조 문학의 최고 성취 ─ 원곡(元曲)

원곡은 원조 문학에서 최고 성취로, 당시(唐詩) 송사(宋詞)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원곡은 극곡(劇曲)과 산곡(散曲) 두 가지를 포함한다. 극곡은 당시에는 잡극(雜劇)이라 불렸으며 원대에 극도로 성행했다. 통계에 따르면 이름을 파악할 수 있는 극작가가 80여 명이고 작품은 500여 종에 달하며, 현재까지 보존된 것도 160여 종이 넘는다.

원조 이전 전통의 문학 체재는 서정적인 시가와 산문이었으나, 원나라 이후부터는 문학 작품의 체재에 스토리가 있고, 인물이 있고 대사가 있고 노래가 있는 희극(戲劇)이 나타났다.

지원(至元)·대덕(大德) 시기(1264년~1307년)에 출현한 유명한 극작가로는 관한경(關漢卿), 백박(白樸), 마치원(馬致遠), 정광조(鄭光祖) 등이 있으며, 세간에서는 이들을 흔히 원곡사대가(元曲四大家)라 부른다. 이들의 대표 작품은 관한경의 《두아원(竇娥冤)》, 백박의 《오동우(梧桐雨)》, 마치원의 《한궁추(漢宮秋)》, 정광조의 《천녀이혼(倩女離魂)》 등이다. 이 밖에 왕실보(王實甫)의 《서상기(西廂記)》 역시 널리 회자되는 명작이다. 이 작품들은 모두 다양한 정도로 당시의 현실 생활을 반영하였으며 매우 높은 예술 성취를 지니고 있다.

한편, 산곡이란 잡극(雜劇) 속에 등장하는 곡패(曲牌)와 마찬가지로 대사나 절자(折子)가 없는 노래를 가리키는데, 또는 간단히 원대의 민가(民歌)를 말하기도 한다. 그 안에는 한 세트를 이루는 ‘투수(套數)’와 ‘소령(小令)’이 포함되는데,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산곡 작가 중 이름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만 187명이다.

남방에서는 남곡(南曲)의 조율로 연창하는 온주잡극(溫州雜劇) 등 지방극이 발전해서 남희(南戲)가 되었으니, 이를 전기(傳奇)라고도 칭한다. 유명한 4대 전기는 《형차기(荊釵記)》, 《백토기(白兔記)》, 《배월정(拜月亭)》, 《살구기(殺狗記)》이다.

잡극, 산곡 및 남희(전기)은 다방면으로 당시의 현실 생활을 반영하였으며, 후세 연극 문학의 발전과 수많은 지방 희곡의 흥기에 모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시(史詩)

원조는 후세에 잡극, 산곡 및 남희(전기)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일부 우수한 사시(史詩)도 남겼다. 가령 티베트족의 민간 설창체(說唱體) 영웅 서사시인 《게사르 왕전(格薩爾王傳)》이 바로 원조 때 저술되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유행했다. 또한 《밀레르빠전(密勒日巴傳)》도 있는데, 저자의 서명은 후장(後藏)의 광인(狂人) 해여알(海如嘎)이며, 책의 성립은 대략 13세기 후반으로 주로 티베트의 수련자 밀레르빠의 일생을 묘사했다.

이 밖에 또 저자를 알 수 없는 《원조비사(元朝秘史, 즉 몽골비사)》가 있는데, 이는 몽골의 기원과 칭기스칸, 오구데이 칸 당시의 역사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시가, 구비(口碑), 전설 등 민간 구두 문학의 집합체이기도 하며, 몽골 민족의 서사시이자 몽골족이 상고할 수 있는 첫 번째 역사 문헌이다.

사학(史學)

원조 사학의 성취는 주로 마단림(馬端林)이 저술한 《문헌통고(文獻通考)》에서 드러난다. 마단림(1254년~1323년)은 자가 귀여(貴與), 요주 낙평(饒州樂平) 사람이다. 그는 당대 두우(杜佑)의 《통전(通典)》 체례를 모방해 《문헌통고》를 저술했다.

《문헌통고》는 역대 전장제도(典章制度)의 연혁을 중점적으로 서술한 분류(分類) 통사이다. 전서는 348권이며 24류로 나뉜다. 이 책은 《통전》을 모범으로 삼았지만 선택한 제재의 범위와 규모 면에서 모두 《통전》을 능가했다. 내용은 경사(經史)를 채용했을 뿐만 아니라 주소(奏疏)의 의론을 발췌해 인용했는데, 특히 송대(宋代)의 역사적 사실에 상세해 근세 역사 연구를 중시하던 그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이 밖에 원조에 관에서 편찬한 역사책 또한 매우 성행했다. 원조가 건립된 후 중원의 옛 제도를 이어받아 각 황제가 사망한 후 모두 한림국사원(翰林國史院)이나 사관(史官)을 지정해 《실록(實錄)》을 편찬했다. 오직 마지막 황제 순제(順帝)만 나라가 망한 탓에 편찬하지 못했다. 명조 홍무 2년에 《원사(元史)》를 수정한 것은 바로 원대의 《실록》 및 《후비공신열전(後妃功臣列傳)》 등을 모본으로 삼은 것이다. 《원실록》은 오늘날 이미 유실되었고 오직 《원사》 속에서 그 개략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원대 관찬의 주요 사적(史籍)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은 《송사(宋史)》, 《요사(遼史)》, 《금사(金史)》가 있다. 원대 관수(官修)의 대형 사적에는 또 《대원일통지(大元一統志)》와 《경세대전(經世大典)》 등이 있다.

한림국사원에서 몽골문으로 편찬하였고 한문의 《실록》과 유사한 《토브치안(脫蔔赤顏)》은 몽골 황실의 비사(秘史)이다. 몽골의 신하들이 편찬해 규장각(奎章閣)에 소장되었다. 《토브치안》은 나중에 끊임없이 새로 수정되었다. 원본은 이미 산실되었으나 나중에 편찬된 《황금사(黃金史)》 등의 책 속에 일부 단편이 보존되어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