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6년—1368년)
심연(心緣)
【정견망】
음악 및 복식 편
음악
원대는 예술 상에서도 역시 현란하고 다채로운 시대였다. 몽골 초기 음악은 매우 검소하였으며 징, 북, 박판(拍板), 호금 등의 악기만 있었다. 칭기스칸은 서하의 옛 귀족 고지요(高智耀)의 추천에 따라 서하의 옛 음악을 궁정에 들여왔다. 오구데이 시기에 이르러 또 금나라 태상(太常)이 남긴 음악을 연경에서 징발해 사용했다. 뭉케 시기에 이르러 점차 중원 음악의 일부를 채용했다.
세조 쿠빌라이 이후 송의 야악(雅樂)도 제사에서 채용되었다. 한편 연악(宴樂) 때에는 한(漢), 위구르, 서하의 악대가 함께 어우러져 연주되었다. 악기 중에는 중국 음악가가 개량한 아랍 등지에서 전해진 풍금(風琴)이 있었고, 페르시아에서 전해진 화불사(火不思, 현악기의 일종)가 있었으며, 페르시아와 아랍 일대에 유행하던 태평소(嗩吶)도 있었고, 또 호금, 공후, 비파, 운라 등이 있었다. 원곡(元曲)의 흥기는 당시 음악의 발전 교류와 밀접한 연계가 있었다.
복식
원대 복장은 금을 대량으로 사용했는데 이전 조대를 초과했다. 직물에 금(金)을 더하는 것은 진대(秦代) 이전부터 이미 출현했다. 한족(漢族)의 복식에 운용된 것은 그 시기가 대략 동한 혹은 동한 이후이며 게다가 주로 궁정 안에서만 사용되었다. 위진남북조 이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복식에 금을 짜 넣는 풍속이 전국적으로 보급되었다. 송대 귀족 복식의 금 사용은 기술 상에서 이미 18종에 달할 정도로 발전했다. 요·금 통치 지역의 직금(織金) 기술 또한 매우 큰 진보가 있었으며, 특히 위구르 지역에서 가장 성행하였고 직조한 옷감이 가장 정미(精美)했다. 원대는 요·금을 뒤이어 직물에 금을 사용하는 것이 전대보다 더욱 성했다.
원대 귀부인의 복식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신분이 비교적 높은 부인들은 모두 고고관(顧姑冠)을 썼다. 일반 부인들은 모피 모자를 썼다. 몸에 걸친 의복은 모두 넓고 헐렁하면서 풍만했고 길이는 대개 발에 드리워졌으며 옷자락이 땅을 쓸어 걷을 때 노복이 뒤에서 따라붙어 떠받쳐야 할 정도였다. 돈황 벽화의 원대(元代) 공양인 형상이 바로 이러한 상황이다.
원대 귀족은 한족의 제도를 답습하여 의복에 용 무늬를 널리 짜 넣었다. 《원사·여복지(元史輿服志)》 기록에 따르면 황제가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곤복(袞服), 폐슬(蔽膝 무릎 덮개), 옥잠(玉簪), 혁대(革帶), 수환(綬環) 등에는 각종 용 무늬가 장식되어 있었으며 곤복 한 벌에만 용이 여덟 마리였는데 이는 옷깃과 옷자락 테두리에 새긴 작은 용은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다. 용 도안은 한족(漢族)의 전통 도안으로 화하 민족의 상징을 대표했다. 만당(晩唐) 오대(五代) 이후 북방 소수민족들이 잇달아 정권을 건립하면서 예외 없이 이 도안을 이어서 사용했다. 원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두드러져 복식에 용을 대량으로 사용한 것 외에 기타 생활 기구 속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원대 몽골족 남자는 등나무 껍질로 만든 ‘와릉모(瓦楞帽)’라는 일종의 모자를 썼는데 각진 것과 둥근 것 두 가지 양식이 있었으며 꼭대기 중앙은 보석으로 장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