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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청사진】 태양왕의 세기 (1) 서막

하도(夏禱)

【정견망】

1668년 파리 대로에서 내려다본 베르사유 궁전과 정원. (공유 영역)

1715년 루이 14세가 서거한 지 이제 300년이 되었다. 지난 2015년 9월 1일,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휘황찬란한 베르사유 궁전을 찾아와, 서거한 태양왕과 그에 따라 사라진 위대한 세기(le grand siècle)를 자발적으로 기념했다. 베르사유 궁전은 성 북측 성관에 루이 14세 홀을 특별히 마련하고 성대한 가장무도회를 개최했다. 사람들은 17세기의 화려한 의복을 입고 등불이 휘황찬란한 베르사유 궁전으로 걸어 들어갔다. 옷의 향기와 머리카락의 그림자, 술잔이 오가는 사이에서 우리는 마치 자신감 넘치고 고결했던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인류의 역사는 한 편의 큰 연극이며, 주마등처럼 돌아가며 심한 기복이 생겨난다. 극장에서 공연되는 극에 비하면, 이 세계사는 천지 사이에 펼쳐진 한 장면 한 장면의 연이은 명작과도 같은 대작이다. 이 천추만대에 끊이지 않는 연극과 옷을 갈아입으며 등장하는 다양한 배역 중에서, 어떤 대작이나 배역은 더욱 사람을 매료시킨다. 그들은 후세의 삶에 녹아들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그들은 문명의 창조자가 된다.

여기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시대와 그 시대의 잊지 못할 사람들이다. 우리가 유의할 점이 하나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위대한 루이 14세 시대가 성취하려 했으나 결국 완성하지 못했던 것이 우리 시대에 완성될 것이라는 점이다. 즉, 이 한 편의 큰 연극은 꼬박 300년을 뛰어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늘이 내린 아이

루이 14세의 탄생은 하나의 기적과 같았다. 마치 하늘이 특별히 시기를 선택해, 그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무대 위에 안착시킨 듯했다.

루이 14세가 태어나기 약 40년 전, 그의 조부 앙리 4세가 비로소 오랜 전란의 폐허 속에서 프랑스를 일으켜 세웠다. 백성들이 ‘좋은 왕 앙리’라 부르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손에 넘겨진 프랑스는 거의 파멸 상태였으며, 프랑스인들에게 프랑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의 부친 루이 13세 통치 기간 동안 프랑스는 유럽 여러 나라가 연루된 30년 전쟁을 겪었고, 마침내 합스부르크 왕가를 격파하며 유럽에서 강자로 부상했다. 그러나 한 가지 저주가 이 승리 위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루이 13세와 스페인 공주 오스트리아의 안나가 결혼한 지 23년 동안 자식이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어린 루이 14세가 탄생했을 때, 부르봉 왕조 전체는 환호했다. 이 아기는 늦게 찾아온 선물로 여겨졌으며, 사람들은 그를 ‘신이 주신 아이’라 불렀다.

王太子时代的路易十四。Philippe de Champaigne画。(公有领域)

왕세자 시절의 루이 14세. 필리프 드 샹페뉴(Philippe de Champaigne) 그림. (위키백과)

1643년, 네 살 반의 어린 루이는 모후의 품에 안겨 보좌에 올랐고 프랑스의 국왕이 되었다. 한 초상화에서 어린 루이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색 곱슬머리를 하고, 아름다운 장미색 갑옷을 입은 채 부드러운 파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앳된 뺨은 고귀하면서도 달콤하다. 이 어린 국왕이 자신감 넘치는 영명한 군주로 성장해 4분의 3세기 동안 프랑스를 통치하며 역사상 가장 오래 재위한 군주가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문화적 영토는 프랑스를 훨씬 넘어 유럽 전체를 덮었다.

루이 14세는 유럽 왕실 중에서 자부심을 가질 만한 혈통을 지녔다. 그의 부친 루이 13세는 부르봉 왕조의 국왕이었고, 그의 조부 앙리 4세는 인자하고 열정적이었으며 부르봉 왕조의 견고한 기초를 닦았다. 그의 외조부는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였으며, 당시 스페인은 유럽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이었다.

어린 루이의 모계 혈통은 더욱 대단했다. 모후인 오스트리아의 안나는 스페인 공주였고, 조모는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마리 드 메디치(Marie de Medici)였으며, 외증조모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2세의 딸이었다. 또한 어린 루이의 피에는 오스트리아와 바이에른 왕실의 고귀한 혈통도 흐르고 있었다.

루이 14세의 혈연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키텐의 국왕인 ‘경건왕 루이(Louis the Pious)’에 닿는다. 이 경건한 국왕은 샤를마뉴 대제의 아들이었으며, 샤를마뉴 대제는 신성로마제국의 기초를 닦았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세계의 보호자로 추앙받았다. 이러한 혈연의 유대 아래, 훗날 루이 14세가 오랜 세월 전쟁을 불사한 것은 바로 신성로마제국의 판도를 재건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루이 14세가 순수한 가톨릭 왕국을 세우려 노력한 것도 이 혈통과 다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먼 혈연은 루이 14세에게 숭고한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확고부동한 신념을 부여했다.

이 신이 주신 아이는 유럽에서 가장 존귀한 혈통을 한데 모았으며, 자신의 부친과 조부가 닦아놓은 견고한 토대 위에서 찬란한 시대를 개척했다.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그 기묘한 시대를 언급할 때면, 그것은 마치 복제할 수 없는 왕관과도 같다.

태양왕의 전설

부친 루이 13세로부터 어린 루이는 유럽에서 막 부상한 프랑스를 물려받았다. 재위 초기 18년 동안은 모후와 추기경 마자랭이 정사를 대행했는데, 그 기간 동안 프롱드의 난이 발생해 어린 루이는 급히 파리를 탈출해 자신의 국토를 떠돌아야 했다. 그러나 몸속에 고귀한 혈통이 흐르는 어린 국왕은 침범할 수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일찍이 소년 루이 14세는 타고난 기예를 드러냈다.

1653년, 15세의 루이 14세는 로마식 전포를 입고 태양의 광채를 상징하는 채색 깃털 왕관을 쓴 채 이동식 무대에 올라 등장했다. 사방에서 몰려든 발레 무용수들이 별처럼 옹위하는 가운데, 그는 엄숙하게 팔다리를 움직이며 천지 일월의 운행을 인도했다. 어둠은 뒤로 물러나고 광명이 도래했다. 이것은 예술의 수호신이자 광명의 신인 태양신 아폴로였다.

이 순간부터 관객석에서 춤을 잘 추는 태양왕을 우러러보던 모후와 근신, 왕친들은 앞으로 프랑스를 이끌어갈 이가 이전의 모든 군주와는 다른 영명한 군주임을 알게 되었다.

24세에 친정(親政)을 시작한 때부터 루이 14세는 거부할 수 없는 위엄을 보여주었다. 《루이 14세 시대》에서 볼테르는 풍채가 당당한 루이 14세가 사냥을 마치고 말에서 내려와, 사냥복 차림에 커다란 가죽 장화를 신고 채찍을 든 채 큰 걸음으로 최고법원에 들어가는 모습을 묘사했다. 그는 존귀한 어조와 자세로 현장의 법관들에게 위엄 있게 말했다.

“나의 칙령은 귀하들이 토론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귀하들에게 나의 칙령에 대한 토론을 중단할 것을 명령한다. 수석 법관, 나는 당신이 이런 회의를 소집하는 것을 금지하며, 귀하들 중 누구라도 이런 회의를 요구하는 것을 금지한다.”

3년 후, 루이 14세가 한 말은 더욱 단호해졌다.

“귀하들은 국가가 귀하들의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짐이 곧 국가다. (l’etat, c’est moi.)”

달콤했던 어린 프랑스 왕은 공정하고 자신감 넘치는 국왕으로 성장했다. 궁정 여관인 모트빌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공정함, 인자함, 관대함, 자제력, 엄격함에 있어서 당대와 역대의 모든 군주가 루이 14세를 따라갈 수 없다.” 생시몽의 회고록과 전해 내려오는 여러 전기에도 루이 14세의 감정적 절제, 신하와 백성을 대하는 관대하고 선한 태도, 언어의 지혜와 신중함이 기록되어 있다. 동시대 사람들이 증언하는 루이 14세와 오늘날 대중문화에서 유포되는 루이 14세는 하늘과 땅 차이이며, 거의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루이 14세가 물려받은 혈통에는 이탈리아의 화려한 성격, 프랑스의 다정하고 낭만적인 예술적 기질, 스페인의 용맹함과 경건함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부친인 루이 13세는 다재다능했다. 그는 류트를 연주하고 작곡하며 무용 의상을 설계했다. 당시 귀족들처럼 그도 무대에 올라 발레를 추었다. 루이 14세는 부친의 예술적 재능을 이어받아 이를 극치까지 확장했다. 그의 궁정에서는 바로크 음악, 몰리에르의 풍자 희극, 고전주의 회화와 성숙해가는 발레가 어우러져 예술의 궁전을 만들어냈다. 천체 성계(星系)에 대응하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신하와 귀족들의 거동은 우아했고 의복은 아름다웠으며, 국왕과 외국 사절 사이의 예법은 마치 춤처럼 아름다웠다.

곧 사람들은 루이 14세의 궁정에 강력한 흡인력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러한 흡인력은 유럽에서 일찍이 전례가 없었던 것이다.

무대에 올라 아폴로를 연기한 때부터 루이 14세는 태양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 영광스러운 칭호가 그에게 부여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가 얻은 수많은 찬사 중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연이 만들어낸 제왕 중의 완벽한 표본이다.”

한 시대를 창조하다

베르사유 궁전 앞의 무지개. (《비향구주(飛向歐洲)》 제공, Rachel Tso 촬영)

루이 14세의 재위 기간은 볼테르에 의해 ‘루이 14세 시대’로 불렸으며, 또한 ‘위대한 세기(le grand siècle)’라고도 불린다. 이 기간 동안 인류는 사상에서 생활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변혁을 겪었다. 어느덧 용맹하고 호전적이며 거칠고 야만적이었던 에우로파(Europa)는 예의 바르고 문화가 집결된 유럽으로 탈바꿈했다. 이 변화의 선풍 중심은 바로 당시 유럽의 수도였던 파리와 전 유럽 귀족들이 선망하던 베르사유 궁전이었다.

루이 14세 시대에서 가장 매력적인 것은 아마도 이 시대를 창조한 사람들일 것이다. 이 시대 말기에 살았던 볼테르는 이렇게 말했다.

“대자연은 프랑스에서 각 예술 분야의 가장 위대한 인물들을 탄생시키고, 궁정에 가장 아름답고 체격이 우아한 남녀를 모으는 것을 즐기는 듯했다. 국왕의 건장한 체구, 위엄 있고 준수한 용모는 모든 신하를 능가했다. 그의 목소리는 엄숙하고 감동적이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지만, 그가 현장에 있을 때는 또 사람들을 경외하게 만들었다. 그는 오직 본인과 그의 지위에만 어울리는 독특한 풍모와 거동을 지니고 있었다.”

자신들이 처한 시대의 중요성에 대해 루이 14세 시대의 사람들은 일종의 자각(自覺)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시간에 흔적을 남길 것임을 알고 있는 듯했다. 루브르 궁전, 베르사유 궁전, 즐비한 화려한 건축물들, 조각상과 정원으로 가득 찬 파리, 기지 넘치고 우아한 프랑스어, 남자들이 머리에 쓴 길고 곱슬거리는 가발 등은 모두 그 시대를 위한 흥미로운 증거로 남을 것이었다.

문화 예술, 정치, 사회 관습 등 모든 면에서 이 위대한 세기는 흔적을 각인시켰다. 과거 귀족들이 권력을 쥐고 자립했던 프랑스에서 루이 14세는 절대군주제의 전형을 확립했으며, 유럽 대륙의 민족 국가 형성을 촉진했다. 또한 그는 고전주의를 강력히 추진하여 고전 예술의 우아한 내실로 당시 사람들의 풍모를 변화시켰다. 동시에 태양왕의 추진 아래 유럽 지식 공화국이 형성되었다. 이 시대는 인류 사상이 가장 큰 진보를 이룬 시대였으며, 유럽인들이 예의 문화를 배우고 어떻게 인간의 형상으로 살아가는지를 배운 시대였다. 형성되고 있던 유럽 전체를 만들어낸 것이야말로 바로 태양왕의 영광스러운 업적이었다.

잃어버린 문화의 청사진

중세 당조(唐朝)의 성세(盛世)처럼 루이 14세 시대에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많은 사적들이 담겨 있었다. 그 무대는 유럽 전체를 가로질렀고, 배우들은 신흥 현대 유럽 각 왕국의 다양한 분야 인물들을 포함했으며, 나아가 신대륙 아메리카, 암흑의 아프리카, 그리고 신비로운 동양에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모든 것이 가능성으로 가득 차고 천진함과 호기심이 넘치던 그 시대에, 태양왕은 수많은 사절을 파견했는데 그중 한 무리가 당시 동양에서 가장 강성했던 중화제국에 도착했다. 머지않아 역사상의 가화(佳話)가 나타났으니, 바로 ‘유럽의 백 년 중국 열풍’이다. 이것은 태양왕과 강희대제(康熙大帝)가 손을 잡고 탄생시킨 동서양 문명의 화려한 만남이었다.

루이 14세 시대의 위대함은 바로 서로 다른 두 세계인 동양과 서양을 연결했다는 점에 있다. 곧 우리는 이 가교를 건설한 루이 14세가 이 세계에 대해 기묘하고도 알려지지 않은 청사진을 가지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보기 드문 열정과 근면함으로 프랑스를 통치한 72년 동안, 그는 마음속의 청사진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겼다. 비록 생애 말기에 루이 14세는 잇따른 좌절을 겪었고, 그가 서거한 후 300년 동안 발생한 격변은 그의 세심한 계획을 뒤흔들어 놓았지만, 이 시대라는 큰 연극의 중심에 태양왕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마치 황금빛 태양처럼 그의 광채는 프랑스에서 뿜어져 나와 유럽 전역을 비추었고, 나아가 동양의 오래된 제국까지 비추었다.

루이 14세 시대는 현대의 조류가 거세게 밀어닥치기 직전이자 세계 사상의 교차로에 위치해 있었다. 태양왕이 세상에 없는 300년 동안, 그가 설계한 인류 문명의 청사진은 시간 속에 유실되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잃어버린 청사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와 루이 14세 시대 사이에는 왜 건너기 힘든 심연이 가로놓여 있는가? 사람들이 평상복을 벗고 300년 전 사람들이 입었던 벨벳 예복을 입고 금은으로 장식된 베르사유 궁전으로 들어설 때, 이 모든 것이 설마 시간의 강물을 거스르는 한낱 꿈에 불과한 것일까?

(계속)

 

원문위치: https://www.epochtimes.com/gb/15/11/9/n456909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