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여(劉如)
【정견망】
【원문】
子曰:“弟子入則孝(1),出則弟(2),謹而信(3),泛愛衆,而親仁(4)。行有餘力,則以學文(5)。”
【주석】
(1)입즉효(入則孝): 집에 들어와서는 부모에게 효도함.
(2)출즉제(出則弟): 밖에 나가서는 연장자를 공경함. 弟(제)는 悌(제)와 같으며, 원래 아우가 형을 공경함을 가리키나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으로 확장하여 해석할 수도 있음.
(3)근이신(謹而信): 언행을 삼가고 신실하며 신의를 지킴.
(4)범애중, 이친인(泛愛衆,而親仁):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고, 어진 이를 가까이함.
(5)행유여력(行有餘力),즉이학문(則以學文): 이상의 도리를 실천하고 나서 여력이 있으면 다시 시·서·예·악 등 문화 지식을 배움. 여기서 글(文)이란 단지 문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고대의 각종 전적(典籍)과 예악(禮樂) 문화를 포함한다.
【직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집에 들어와서는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연장자를 공경하며, 언행을 삼가고 신의가 있으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고 어진 이를 가까이해야 한다. 이것을 실천하고 남은 힘이 있으면 곧 글을 배워야 한다.”
【본장 주지】
배움의 근본은 사람 됨의 도리를 아는 데 있으며, 이를 일상의 언행에 실천하는 데 있다. 따라서 덕행을 수양하는 것과 글을 배우는 것은 단순한 전후 순서의 문제가 아니다. 본 장의 목적은 도덕 품성의 학습이 실천에 중점이 있음을 강조하여, 책을 얼마나 읽었는가를 근본으로 삼아 문장을 다루고 문학적인 재주를 자랑하는 그릇된 길로 사람을 이끌지 않게 하는 데 있다.
【해설】
1. ‘학이시습지’로 바라본 본 장: 배움은 실천이 중요하다
《학이》 제1장에서 공자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고 말했다. 배운 후에 때때로 실천하면 어째서 기쁜가?
공자가 말하는 ‘학(學)’은 성현이 가르친 사람 됨의 도리를 배우는 데 중점이 있고, ‘습(習)’ 역시 단순히 복습하는 것이 아니라 배운 바를 삶 속에서 실천하여, 실천 속에서 도리를 체득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수정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제6장은 바로 이러한 사상을 구체적으로 펼쳐 보이고 총화한 것이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연장자를 공경하는 것은 가정 내에서의 실천이며, 언행을 삼가고 신의를 지키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고 어진 이를 가까이하는 것은 수양을 사회적 교류로 확장한 것이다. 이것들은 학습과 무관한 사람 됨의 규범이 아니라, 학습 자체에 마땅히 담겨야 할 내용이다.
앞선 장들을 돌아보면, 제2장은 효제(孝悌)에서 시작하여 덕을 닦는 것은 인륜 관계에서 출발해야 함을 설명하였고, 제3장은 가정에서 막 덕행을 배우기 시작할 때 말을 교묘하게 하고 낯빛을 보기 좋게 꾸미는 표면적인 공부만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하였으며, 제4장은 충신(忠信)과 반성을 강조하여 사회적 교류에서도 시시각각 자신이 진정으로 실천하였는지 점검할 것을 요구하였고, 제5장은 덕을 닦는 실천을 위정(爲政)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나라를 다스림에 마땅히 어떻게 마음을 다하고 신의를 지키며 절용하고 백성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말했다.
가정에서 사회로, 다시 치국(治國)으로 배움이 미치는 범위는 끊임없이 확대되지만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 됨의 도리를 배우는 것은 반드시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며, 자신을 수양하는 것 역시 일상생활 속에서 바른 도리를 끊임없이 실천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제6장은 별개의 화제를 꺼낸 것이 아니라, 공자가 앞서 말한 학습의 내용을 한 차례 총화하고, 이를 통해 제자들에게 다시 환기한 것이다. 학습은 과연 무엇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는가?
2. ‘행유여력, 즉이학문’의 깊은 뜻
‘행유여력, 즉이학문(行有餘力,則以學文)’은 공자가 독서를 경시했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 됨의 도리와 기타 지식·기술 배움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한 것이다.
고염무(顧炎武)는 “군자가 학문을 하는 것은 도를 밝히기 위함이요, 소인이 학문을 하는 것은 이익을 얻기 위함이다(君子之爲學,以明道也;小人之爲學,以為利也)”라고 말했다.
이 말은 배움이란 먼저 사람 됨의 바른 도리를 밝히는 데 있음을 우리에게 환기한다. 배움의 근본을 잊어버리면 독서를 단지 명리를 취하는 도구로 삼아 사사로운 이익만 탐하는 소인이 되고 만다.
그러나 덕행을 중시한다고 해서 전문 지식과 실제 기술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이 사람 됨의 도리를 안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의술, 공학, 경영 혹은 기타 직업적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일을 잘 해내려면 여전히 그에 상응하는 지식과 방법, 기술을 배워야 한다. 비록 환자를 구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있더라도 의술이 없다면 해낼 수 없는 것과 같다. 둘은 각기 쓰임이 있어 서로를 대체할 수 없다. 하지만 덕행은 지식과 재능을 정당한 쓰임으로 이끄는 근본적인 보장이다.
공자가 사람 됨의 도리를 배우라고 강조한 것은 문화 지식과 기술의 배움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교화함으로써 바른 입신(立身) 준칙을 갖추게 한 뒤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정당한 곳에 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도리어 사회에 해를 끼치는 능력이 커지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덕행과 기술은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도덕 수양으로 전문적인 문화 지식의 배움을 대체하는 극단으로 가서도 안 되고, 기술만 배양하면서 사람 됨을 소홀히 해서도 안 된다. 공자가 사람의 마음을 교화하는 데 주력한 것은 사람에게 올바른 입신 준칙을 갖추게 하기 위함이었으며, 이러한 근본이 선 바탕 위에 지식을 배우고 재능을 넓혀야 비로소 인류에게 복을 가져다주고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게 된다.
솔직히 말해, 공자는 덕행의 교육과 사람 마음의 귀정(歸正)에 중점을 두었을 뿐, 독서나 각종 전문 지식의 배움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행유여력, 즉이학문’이 우리에게 환기하는 바는 몸을 닦는 것과 글을 배우는 것의 단순한 전후 순서가 아니라, 지식과 능력을 추구하고 독서하는 과정 속에서 배움의 근본 목적과 의미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3. 왕양명의 지행(知行) 사상으로 바라본 진정한 배움
명대의 사상가 왕양명(王陽明)은 덕행의 배움과 실천의 관계에 대해 매우 깊이 있게 설명하였다. 《전습록(傳習錄)》에서 그의 제자가 의문을 제기하기를, 오늘날 많은 사람이 마땅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연장자를 공경해야 함을 알고 있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효제(孝悌)를 실천하지 못하니, 이것은 아는 것(知)과 행하는 것(行)이 별개의 문제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왕양명은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단지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이다(知而不行,只是未知)”라고 답변했다.
그는 사람이 진정으로 효제를 안다면 행동 속에서 구현되어야 하며, 단지 효제의 도리를 말할 줄만 알 뿐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면 그러한 인식은 아직 진정한 ‘앎(知)’에 이르지 못한 것이라고 보았다. 성현이 사람들에게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가르친 것은 바로 단지 말로만 아는 데 머물지 않고 깨달은 도리를 행동으로 실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왕양명의 이 말은 근본을 바로잡고 원류를 투명하게 한 것으로, 공자가 말하는 ‘학이시습지’의 본뜻을 깨달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공자는 이치를 배운 후 끊임없이 실천할 것을 강조했고, 왕양명은 진정한 인식은 행동과 단절될 수 없다는 뜻을 다시금 밝힌 것이다.
4. 덕행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
‘행유여력, 즉이학문’은 덕행의 실천을 강조한 것이지 절대적인 전후 순서를 말한 것이 아니다. 책을 많이 읽은 후에 공담으로 흐르거나 문장을 다루며 재능을 자랑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본 장은 제자들에게 독서하고 지식을 구하는 과정에서 배움의 근본이 어떻게 덕행을 갖춘 고상한 군자가 되는가에 있음을 잊지 말라고 환기한다.
그리고 군자의 품성을 배양하는 데 중점을 두는 것과, 군자가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어떤 문화 지식을 더 배워야 하는가 하는 선택은 그 자체로 모순되지 않는다. 기술과 전문성 역시 귀천의 구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후대 학자들이 유학을 농업, 공업, 상업, 의술 등의 직업적 기술과 대립시킨 것은 공자의 본뜻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공자의 제자 중에 상업에 능한 이, 외교에 능한 이, 문학에 능한 이, 치국에 능한 이 등 각기 달랐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학(學)은 사람 됨의 도리를 아는 것이요, 습(習)은 삶 속에서 배운 바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덕행은 재능의 대체품이 아니라 재능을 정당하게 발휘하도록 이끄는 근본적인 보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