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여(劉如)
【정견망】
【원문】
子曰:“道(1)千乘之國(2),敬事(3)而信,節用而愛人(4),使民以時(5)。”
【주석】
(1) 도(道): 다스리다. 여기서 ‘道’는 동사로 쓰여, 국가를 다스림을 가리킨다.
(2) 천승지국(千乘之國): ‘승乘’은 고대에 병거(兵車 전차)로 군사력을 상징했다. ‘천승지국’은 1,000대의 병거를 보유한 제후국을 가리키며, 비교적 큰 제후국을 통칭한다.
(3) 경사(敬事): 정사(政事)를 엄숙하고 진지하게 대하며, 직책을 다하고 책임을 다하며, 건성으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다.
(4) 애인(愛人):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다. ‘절용이애인(節用而愛人)’은 국가의 쓰임새를 절제하여, 위정자의 무절제한 사치로 인해 백성의 부담을 가중하지 않음을 가리킨다.
(5) 사민이시(使民以時): 백성의 노동력을 부릴 때는 시령(時令)에 주의해야 하며, 특히 농사철을 놓치게 해서는 안 되어, 백성이 정상적으로 농사짓고 생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한다.
【번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제후의 나라를 다스림에는 정사를 엄숙하고 진지하게 처리하고 신용을 엄격히 지켜야 하며, 쓰임새를 절제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아껴야 하며, 백성의 노동력을 부릴 때는 시령에 주의하여 그들의 생산을 놓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본장 요지】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재주를 자랑함에 있지 않고 덕정(德政)에 있으며, 혼란을 막는 요체는 평소에 백성을 번거롭게 하지 않음에 있지, 혼란이 일어난 후에 비로소 다스림을 구함에 있지 않다.
【本章要旨】
治國之本,在德政而不在逞才;防亂之要,在平日不擾民,而非亂後方才求治。
개인의 수신(修身)에서 국가를 다스림에 이르기까지, 이치는 하나로 이어진다. 위에 있는 자가 직책을 다하고 신용을 지키며, 욕망을 절제하고 백성의 힘을 아껴 백성이 안거낙업(安居樂業)하게 하면, 사회는 안정의 근간을 갖추게 된다. 진정한 국정 운영은 문제가 생긴 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에 중점을 두어서는 안 되며, 평소에 미연에 방지하여 문제가 생겨나지 않도록 하는 데 더 크게 존재한다.
【해설】
1. 개인의 삼성(三省)에서 국가 다스림에 이르기까지, 근본은 여전히 덕을 닦음
지난 장에서 증자는 “나는 매일 세 가지로 내 몸을 살핀다(吾日三省吾身)”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고, 친구와 사귀며, 스승이 전한 도(道)를 실천하는 세 가지 측면에서 자신의 언행을 반성했다.
이 장에서 공자는 시야를 개인에서 국가로 넓혀, 제후의 나라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를 말한다. 겉보기에는 수신에서 치국(治國)으로 옮겨간 듯하지만, 사실 배움의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개인은 자신이 정성을 다했는지, 신용을 지켰는지 반성해야 하고, 국가를 다스림 역시 위정자가 진지하게 직무를 이행하는지, 언행에 신용이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개인은 사욕을 제어하여 자신만을 돌보아서는 안 되고, 위정자는 더욱이 쓰임새를 절제하여 백성을 아껴야 한다. 개인의 행실은 남을 배려해야 하고, 국가가 민력을 부릴 때도 반드시 백성의 생계와 시령을 배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수신과 치국은 두 가지 이치가 아니다. 개인의 수신은 자신의 언행을 바르게 하는 것이고, 치국안민(治國安民)은 위정자의 덕행을 백성을 해치지 않고 번거롭게 하지 않는 정사로 실현하는 것이다.
공자가 처음부터 어떻게 능력 있는 신하를 선발하고 어떻게 모략을 꾸밀 것인가를 말하지 않고, 먼저 “경사이언(敬事而信),절용이애인(節用而愛人),사민이시(使民以時)”를 말한 것은, 국가를 다스림에 있어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 나라가 혼란해진 후 일을 얼마나 멋지게 처리했는지, 위정자의 업적이 얼마나 현저한지,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가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처음부터 국가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피하는 법을 알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위정자가 덕을 잃고 망동하여 백성을 해치지 말고, 부지런히 정사를 살피고 백성을 사랑하며 덕정을 시행할 것을 강조한다. 이것이야말로 치국(治國)의 근본이다.
2. 나라를 다스림은 병 치료와 같아: 병이 난 후 의사를 찾기보다 미리 방비해야
고인(古人)은 흔히 나라를 다스림이 병을 치료함과 같다고 말했다. 병은 예방이 근본이다. 사람이 만약 평소에 음식에 절제가 있고 행동에 절도가 있으며 일과 휴식이 적당하여 신체의 규칙에 순응하고 일방적으로 자신을 무리하지 않는다면, 많은 질병이 발생할 기회를 줄일 수 있다.
반대로 만약 평소에 아무런 절제가 없어서 음식에 절도가 없고 행동이 문란하여, 신체가 심각하게 손상된 후에야 비로소 양생할 것을 떠올린다면 이미 너무 늦다. 이때는 당연히 의술이 고명高明)한 의사가 와서 구하고 치료해야 한다. 병세가 위중할수록 의사의 의술이 뛰어날 것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는 치료의 난이도가 크고, 비록 고친다 해도 원기를 크게 상하게 된다.
이것은 병이 위중할 때 명의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의술이 아무리 높아도 평소의 양생과 보살핌을 대신할 수 없으며, 치료가 물론 중요하긴 하지만 병을 예방함이 더욱 근본이라는 말이다. 나라를 다스림도 그러하다.
만약 위정자가 평소에 자신을 누르고 덕을 지키며, 일을 처리함에 진지하고 신용이 있으며,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여 함부로 민력을 소모하지 않는다면, 백성은 안정되게 생활할 수 있고 사회도 혼란에 빠지는 일이 비교적 적다.
반대로 만약 위에 있는 자가 사치스럽기 그지없고 정령(政令)이 번복되며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고, 또 백성의 생계를 돌보지 않다가, 민생이 궁핍해지고 사회 질서가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백성을 아끼고 관리의 비리를 정돈할 생각을 한다면, 자연히 수습할 재능이 뛰어난 신하를 찾을 필요가 특별히 생기며, 그 대가는 막대하다.
이때 뛰어난 재능을 가진 관리의 존재는 물론 없어서는 안 되니, 마치 중병에 걸렸을 때 명의가 필요한 것과 같다. 그러나 단지 혼란 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만 중시하고 평소의 덕행과 다스림을 경시한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공자가 중시한 것은 근본적으로 동란이 발생하는 조건을 줄이는 것이지, 천하에 큰문제가 생긴 후 다시 누구의 재주와 지혜가 더 뛰어난지, 누가 잔국(殘局)을 더 잘 수습하는지 겨루는 것이 아니다.
3. 절용이애인(節用而愛人): 한문제가 누대 건설을 포기
공자는 “쓰임새를 절제하고 백성을 사랑한다(節用而愛人)”라고 말했다. 어째서 쓰임을 절제하는 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과 연결될 수 있는가?
국가의 재력과 민력(民力)은 모두 공중에서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정자가 사치를 한 번 더 부리면 흔히 누군가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짊어져야 하며, 위에 있는 자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수 있으면 백성은 한 분의 부담을 경감할 수 있게 된다.
《사기·효문본기》 기록에 따르면, 한문제(漢文帝)는 재위 기간 동안 궁실, 원유(園囿), 거마, 의복 등의 지출을 함부로 늘리지 않았다. 한번은 그가 누대를 하나 짓고자 하여 장인을 불러 비용을 추산하게 했는데, 그 결과 백금(百金 금 백 근)이 필요했다.
이 액수를 들은 후 한문제가 말했다.
“백금은 중산층 열 가구의 재산이다. 내가 선대 임금께서 남기신 궁실을 이어받았음에도 항상 누리는 것이 과하여 부끄러울까 두려운데, 어찌 대(台)를 짓겠는가!”
이 기록은 또한 한문제가 평소 옷차림이 소박하여, 총애하는 신부인(慎夫人)의 치맛자락이 땅에 끌리지 않을 정도로 짧고 휘장에도 화려한 자수를 쓰지 않았으며, 자신의 능묘를 조성할 때도 똑같이 간소하게 할 것을 요구하여 이로 인해 백성을 번거롭게 하는 것을 피했다고 전한다.
이러한 세부 사항들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태도를 보여준다. 높은 자리에 거하는 것이 국가의 재력을 개인의 누림을 만족시키는 도구로 여겨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을 때, 그것이 필요한지, 가치가 있는지, 백성에게 부담을 가중하지는 않는지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절용애인”의 의미이다. 진정한 절용은 절약하기 위해 절약하는 것이 아니며, 필요한 지출을 무조건 깎아버리는 것도 아니고, 국가의 재력과 인력을 개인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도구로 삼지 않는 것이다.
국가가 흔들리고 백성이 난리를 겪을 때 구휼할 수 있는 것 또한 위정자가 백성을 사랑하는 것으로 여겨져 뛰어난 정적(政績)을 남긴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백성의 입장에서 볼 때 위정자가 청렴하고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지 않고 평소에 백성을 아끼는 것이야말로 백성을 위해 생존과 생활의 여지를 남겨주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어찌 수시로 구제 받을 지경에 떨어지겠는가.
위에 있는 자가 자신의 욕망을 거두어들일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으로 백성의 생활을 긍휼히 여기고 잘 돌볼 수 있게 된다.
4. 사민이시(使民以時): 백성이 생계를 놓치게 해서는 안 된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백성의 생활은 계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봄의 씨뿌리기, 여름의 김매기, 가을의 수확, 겨울의 저장 모두 각각 그 때가 있다. 만약 씨를 뿌리고 거둬들이는 등 중요한 시기에 빈번하게 백성을 동원한다면, 비록 출발점이 국사를 잘 처리하기 위함일지라도 농사를 망쳐 백성의 한 해 노고를 물품으로 돌릴 수 있다.
《맹자·양혜왕 상》은 이를 상징적으로 설명했다.
“농사철을 어기지 않으면 곡식을 다 먹을 수 없으며, 촘촘한 그물을 연못에 넣지 않으면 물고기와 자라를 다 먹을 수 없으며, 도끼를 제때 산림에 들여보내면 목재를 다 쓸 수 없다(不違
뜻인즉, 농사철을 어기지 않으면 곡식이 풍족해질 것이고, 촘촘한 그물로 연못에서 남획하지 않으면 물고기와 자라가 계속 번식할 수 있으며, 계절에 따라 산림을 베어내면 목재 역시 지속적으로 공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농업 생산의 법칙뿐만 아니라, 나아가 일종의 국정 운영의 지혜이다. 일을 함에 천도의 순서에 순응할 줄 알고, 취하고 씀에 절도가 있어야 한다. “사민이시”는 바로 이러한 천도의 운행 순서에 부합하는 배려와 지혜를 치국에 실현하는 것이다. 백성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 민력을 씀에 절도가 있게 하는 것이다. 관청은 자신의 사무나 일시적인 필요만 고려하여 함부로 백성의 정상적인 생산과 생활을 흐트러뜨려서는 안 된다.
좋은 다스림은 백성으로 하여금 관청이 자신을 관리하고 있음을 늘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안심하고 자신의 나날을 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5. 덕정이 근본이고 재능은 보조: 평소에 어지럽지 않다면 어찌 일마다 보완하겠는가
이제 다시 공자가 말한 세 가지 요구를 돌이켜본다.
“경사이신”은 위정자가 직책을 다하고 신용을 지켜 번복되는 정령으로 민심을 잃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이고,
“절용이애인”은 위정자가 사욕을 제어하여 백성의 재력을 탕진의 출처로 삼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이며,
“사민이시”는 위정자가 백성의 생계를 존중하여 시정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산을 방해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세 가지는 각기 중점을 두는 바가 달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동일한 한 가지 일을 강조하고 있다. 위정자가 먼저 스스로를 단속해야만 비로소 백성에 대한 피해를 줄일 수 있으며, 천도(天道)의 시령을 따라 백성을 번거롭게 하지 않아야 백성이 안거할 수 있고 장기적인 사회 안정의 근간이 된다는 점이다.
한 사회의 풍기가 순박하고 위정자가 청렴하며 백성을 사랑하여, 백성에게 정상적인 생활과 생계를 도모할 공간이 있다면, 많은 일들이 일상 질서 속에서 자연스럽게 운행될 수 있다.
이것은 몸을 양생하는 것과 같다. 절제할 줄 알고 법칙에 순응하며 평소에 보살피면 질병을 줄일 수 있다. 명의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병에 걸리는 것을 생활의 상태로 삼지 않는 것이다.
나라를 다스림도 마찬가지이다. 사회가 심각하게 질서를 잃었을 때 능력 있는 대신과 장수가 물론 중요하지만, 만약 국가의 안정을 소수의 재능에 기탁하고 위정자의 덕행과 평소의 다스림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끝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공자는 재능을 경시한 것이 아니라 덕행이 근본임을 강조한 것이다. 재능은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덕정은 근본적으로 문제를 줄일 수 있다. 혼란 후에는 능신(能臣)이 구제하여 치료해야 하지만, 평소에는 덕정으로 혼란을 방지함이 더욱 필요하다.
개인의 수신에서 치국안민에 이르기까지 이치는 늘 통한다. 문제가 생긴 후에 보완할 방법을 찾는 것보다, 일상의 언행 속에서 자신을 바르게 하고 일상의 다스림 속에서 백성을 아끼는 편이 낫다.
이것이야말로 공자가 이 장에서 진정으로 중시한 치국의 도(道)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