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770년-기원전 221년)
심연
【정견망】
춘추전국시대 수백 개의 제후 국가가 서로 칼을 겨누고 약육강식하던 때에 도가(道家), 유가(儒家), 병가(兵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종횡가(縱橫家), 음양가(陰陽家) 등 제자백가가 다투어 일어나는 국면이 나타났다. 또한 《좌전(左傳)》, 《춘추(春秋)》 등 당시 역사를 상세히 기록한 저작들도 잇달아 탄생했다. 이 장관이었던 ‘백가쟁명’의 장면은 유럽의 르네상스보다 대략 2000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왜 이 시기에 백가쟁명의 국면이 나타났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사회가 발전하고 사람들의 사욕(私慾)이 증가함에 따라, 상고 시대의 대도(大道)와 하·상·서주 시대 현왕(賢王)들이 세상을 다스리던 도(道)가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 점차 현실적인 ‘이익’에 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군주는 영토 확장을 도모해 국가의 강성한 지위를 얻으려 했고, 백성은 “재물과 힘을 자신만을 위해 쓰며 각자 사사로움을 챙겼다”[貨力爲己、各私其私]. 이로 인해 국가 간 정전(征戰)이 매우 빈번해졌으며, 덕행이 아닌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법칙이 점차 사람들이 가늠하는 표준이 되었다.
이런 난세를 당해 위로는 군왕(君王)부터 아래로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국가를 다스리고 시폐를 구제할 방법을 찾기를 간절히 바랐다.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제자들의 학설이 분분히 등장하여, 사람들의 행위 도덕을 규범화하는 방법을 포함해 각자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학설은 많았으나 시대의 변화를 대표하는 것은 주로 도가, 유가, 묵가, 법가, 음양가, 농가 등이었다. 특히 유가와 도가는 이후 중국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후세의 많은 학자는 이 시기를 중화 문화와 사상, 지혜가 크게 발전한 시대로 칭송한다. 하지만 후세에 대성지성선사(大成至聖先師)로 존경받는 공자는 오히려 먼 옛날 대도가 행해지던 때와 주공(周公)이 세상을 다스리던 시대를 매우 그리워했다. 그는 노년에 이르러 탄식하며 말했다. “봉황이 다시 날아오지 않고, 하도(河圖)가 다시 나타나지 않으니, 나도 주공을 꿈에서 본 지 오래되었구나. 태산이 무너지려 하고, 대들보가 부러지려 하며, 성인(聖人)이 시들어가고 있구나.”
공자와 동시대의 또 다른 대각자(大覺者)인 노자(老子)도 천고에 전해 내려오는 《도덕경(道德經)》에서 “도를 잃은 후에 덕이 나타나고, 덕을 잃은 후에 인이 나타나며, 인을 잃은 후에 의가 나타나고, 의를 잃은 후에 예가 나타난다[失道而後德,失德而後仁,失仁而後義,失義而後禮]”라고 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노자는 도덕이 인의(仁義)보다 훨씬 높다고 여겼기에 “대도가 폐해지니 인의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즉, 대도가 없어졌기에 비로소 인의를 추구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노자는 더 나아가 “지혜가 나타나니 커다란 거짓이 생겼고, 육친이 화목하지 않으니 효도와 사랑이 나왔으며,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 나왔다.(智慧出,有大偽;六親不和,有孝慈;國家昏亂,有忠臣。)”라고 했다. 현대인의 개념에서 인의, 지혜, 효자, 충신의 등장은 모두 축하할 만한 기쁜 일이지만, 노자는 이 모든 것이 대도가 몰락하고 사회가 혼란해지며 도덕이 하락한 결과라고 보았다.
왜 이천여 년 전의 노자와 공자는 이토록 탄식했을까? 우리는 그 속에서 어떤 계시를 얻을 수 있을까? 먼저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도가: 반본귀진(返本歸眞)의 진법(眞法)
도가의 비조(鼻祖) – 노자
노자의 성은 이(李)이고 이름은 중이(重耳), 자는 백양(伯陽)이며 춘추 시대 초(楚)나라 고현(苦縣) 곡인리(曲仁里 지금의 하남성 녹읍현) 사람이다. 전설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가 어느 날 하늘에서 큰 유성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태기가 있었다고 한다. 상계(上界)의 신령한 기운이 이씨 집에 나타난 것이기에 노자는 태어난 후 범인의 성을 따서 이씨가 되었다.
어떤 이는 노자는 천지가 개벽하기 이전에 태어났으며 하늘의 정령이자 신백(神魄)이니 자연히 신령이라 하고, 또 어떤 이는 노자의 어머니가 그를 72년 동안 품었다가 왼쪽 겨드랑이를 가르고 낳았는데 태어날 때부터 백발이 성성했기에 이름을 노자라 했다고도 한다. 후세에 널리 받아들여지는 또 다른 해석은 ‘노(老)’는 덕망이 높다는 뜻이고 ‘자(子)’는 옛날 남자에 대한 미칭이므로 ‘노자’는 사람들이 그를 높여 부르는 존칭이라는 것이다. 노자의 생몰 연대는 불분명하다.
노자는 매우 장수하여 200여 년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문왕과 무왕 시기를 거치며 주나라의 ‘수장실사(守藏室史)’(지금의 국가도서관장 혹은 역사박물관장에 해당)와 주하사(柱下史)(진한 시대의 어사에 해당)를 지냈기에 옛 제도와 예제(禮制)에 정통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의 기질과 품성 또한 남달랐다고 한다. 기원전 520년, 주나라 왕실에 왕위 쟁탈 내전이 발생하자 노자는 그 일에 연루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 화를 피하고자 노자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이름을 숨기고’ 사방을 떠돌았다.
[역주: 기원전 520년 주 경왕(景王)이 후사를 정하지 않고 급사하자 조정의 실권을 쥔 유씨와 단씨 세력이 왕자 맹(猛)을 도왕(悼王)으로 옹립했다. 이에 생전에 경왕의 총애를 받던 왕조 조(朝)가 광범위한 지지를 바탕으로 반격에 나서 도왕이 병사하고 도성을 차지한다. 유씨와 단씨 세력이 도왕의 동생인 왕자 개를 다시 경왕(敬王)으로 세우며 5년간 내전상태에 빠져 극심한 혼란이 초래되었다. 결국 기원전 516년 패권국인 진(晉)나라가 파병해 경왕을 호위하자 왕자 도를 지지하던 세력은 주나라의 보물과 전적 등을 지닌 채 초나라로 망명한다.]
그 후 그는 서쪽 진(秦)나라로 향했다. 함곡관(函谷關 지금의 하남성 영보현 서남쪽)을 지날 때, 관문을 지키던 윤희(尹喜)가 점을 쳐보고 신인(神人)이 이곳을 지나갈 것을 미리 알아차려 40리 길을 청소하고 영접했는데, 과연 노자가 왔다. 노자는 중원 일대에서 아무것도 전수하지 않았으나, 윤희가 장차 도를 얻을 운명임을 알고 그곳에 머물렀다.
서갑(徐甲)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소년 시절부터 노자에게 고용되어 하인으로 일했다. 노자는 매일 대략 백 전을 주기로 했는데, 갚지 못한 품삯이 총 720만 전이었다. 서갑은 노자가 관문을 나가 멀리 떠나려는 것을 보고 품삯을 빨리 받고 싶었으나 불가능할까 봐 두려워, 사람을 시켜 윤희에게 고소장을 써서 올렸다. 서갑을 대신해 고소장을 쓴 사람은 서갑이 노자를 200여 년 동안 수행했다는 사실을 몰랐고, 그저 그가 품삯을 받으면 부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자기 딸을 서갑에게 시집보내기로 약속했다. 서갑은 그 여자가 매우 아름다운 것을 보고 더욱 기뻐하며 노자를 고발하는 고소장를 윤희에게 제출했다.
관령인 윤희가 고소장을 보고 크게 놀라 노자에게 알렸다. 노자가 서갑에게 말했다. “너는 진작 죽었어야 했다. 내가 당초 관직이 낮고 가난해 심부름할 사람조차 없어서 너를 고용했고, 동시에 너에게 ‘태현청생부(太玄淸生符)’를 주었기에 네가 오늘날까지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 나를 고발하느냐? 내가 당초 너에게 ‘안식국(安息國)’에 들어가게 되면 그때 황금으로 계산해 품삯을 전부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 어찌 이리 급하게 기다리지 못하느냐?” 말을 마치고 서갑에게 땅을 향해 입을 벌리게 하니, ‘태현진부(太玄眞符)’가 즉시 튀어나왔다. 부적 위의 주사 글씨는 방금 쓴 것처럼 생생했으나, 서갑은 즉시 한 구의 마른 뼈로 변해버렸다.
윤희는 노자가 신인(神人)임을 알고 무릎을 꿇고 절하며 서갑을 위해 빌었고, 스스로 노자의 빚을 갚겠다고 했다. 노자가 그 태현진부를 다시 서갑에게 던져주니 서갑은 즉시 부활했다. 윤희는 서갑에게 200만 전을 주어 보냈다. 윤희가 노자에게 공경히 제자의 예를 올리자, 노자는 장생(長生)의 도에 관한 비방(秘方)을 윤희에게 전수했다. 윤희가 다시 더 깊은 가르침을 청하자 노자는 5000자를 구술했고 윤희가 돌아가 이를 기록하니 이것이 바로 노자의 유명한 경전인 《도덕경》이다. 이로 인해 노자는 도가의 비조로 여겨진다. 후에 윤희는 노자의 가르침에 따라 수련하여 과연 신선이 되었다.
노자의 사상
노자의 사상은 대개 《노자》라는 책에 보존되어 있다. 《노자》는 총 81장으로 상·하 두 편으로 나뉘는데, 앞의 37장이 상권이고 뒤의 44장이 하권이며 총 5000여 자다. 도(道)와 덕(德)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에 훗날 사람들은 이를 《노자도덕경》이라 불렀다. 지금 우리가 보는 《노자》는 노자의 원저가 아니라 전국시대 사람들의 글이 더해진 것이나, 그 주요 사상은 노자의 것이다. 그 기본 사상의 범주는 ‘도’이므로 도가라 칭한다. ‘도가’라는 명칭은 한나라 사마천의 《논육가지요지(論六家之要指)》에 처음 등장한다.
후세의 많은 이는 《노자》를 단지 위대한 철학 저작으로만 보지만, 진정으로 인연 있는 사람은 이를 득도(得道) 수련의 법으로 여기고 이에 의지해 수련함으로써 인생의 목적인 반본귀진에 도달했다. 노자가 개편(開篇)에서 말했듯이 “도라고 말할 수 있는 도는 늘 상도(常道)가 아니다.” 노자의 ‘도’는 ‘상도’가 아니며, 도가 있는 그와 속인은 천양지차다.
“속인은 밝고 밝으나 나 홀로 어둑하며,
속인은 살피고 살피나 나 홀로 멍청하구나.
사람들은 모두 쓰임이 있으나 나 홀로 완고하고 촌스럽도다.
나 홀로 남과 달라 어머니(대도)를 귀하게 여기노라.”(《노자》 20장).
제70장에서 노자는 진정한 도의 귀중함을 진일보로 설명한다.
“나의 말은 알기 매우 쉽고 행하기도 매우 쉬우나,
천하에 능히 아는 이가 없고 능히 행하는 이가 없구나.
말에는 종지가 있고 일에는 주인이 있도다.
오직 무지하기에 나를 알지 못하는구나.
나를 아는 이가 드무니 나를 따르는 자가 귀하도다.
이 때문에 성인은 베옷을 입었으나 품 안에는 옥을 품고 있느니라.”
그것이 일반적인 ‘도’가 아니며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비로소 매우 소중한 것이다. 대도가 전해질 때 세상의 미혹 속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 또한 제각각이다.
“상사(上士)는 도를 들으면 부지런히 행하고, 중사(中士)는 도를 들으면 있는 듯 없는 듯 여기며, 하사(下士)는 도를 들으면 크게 비웃나니, 비웃지 않으면 도라고 하기에 부족하다.”(《노자》 41장)
인연 있는 사람이 도를 얻게 하고 상사(上士)가 마침내 반본귀진하게 하기 위해, 노자는 짧은 5000자 속에 이 ‘도’의 함의와 우주의 형성, 만물의 본원과의 관계, 사람 되는 법과 최종적으로 어떻게 반본귀진에 도달하는지 등 일련의 문제를 말했으며, 다른 문제들에 대한 설명은 바로 그 최종적인 목적을 위한 바탕이었다. 노자는 수련하는 사람이 수련의 법을 알게 하려고 ‘도’를 얻은 성인(聖人)이 각종 문제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하는지를 여러 번 언급하며 본보기로 삼게 했다. 아래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노자의 저작과 결합하여 설명한다.
*도의 함의
《노자》 제1편은 머리말에서 뜻을 밝힌다.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상도(常道)가 아니며,
이름을 이름 지을 수 있으나 상명(常名)이 아니다.
무(無)는 천지의 시작을 이름하고,
유(有)는 만물의 어머니를 이름한다.”
노자가 말한 이 비범한 ‘도’는 대체 무엇인가?
노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어떤 물건이 혼돈히 이루어져
천지보다 먼저 생겨났으니,
……천지의 어머니가 될 수 있도다.
나는 그 이름을 모르니 자를 붙여 도라 한다.”
바로 이 신기한 ‘도’는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며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지만,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노자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도의 물됨은 오직 황홀하도다.
황하고 홀한 가운데 형상이 있고,
황하고 홀한 가운데 물건이 있으며,
깊고 어두운 가운데 정(精)이 있으니,
그 정이 매우 참되어 그 가운데 믿음이 있도다.”
천지의 어머니라 불리는 ‘도’는 자연히 우주 만물이 발생하는 기원의 근본이다. 연구자들은 유와 무가 ‘도’가 운행할 때의 두 가지 상태라고 지적한다. 무(無)는 천지를 낳는 동력이고, 유(有)는 만물의 본시(本始)다. 그래서 노자는 마지막에 “천하 만물은 유에서 생기고, 유는 무에서 생긴다”라고 했다.
우주의 본원이라 불리는 ‘도’가 생발(生發)한 결과는 어떠한가?
노자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을 등에 지고 양을 가슴에 안으며, 충기(沖氣)로써 조화를 이룬다.”
전반 우주의 연변(演變)은 바로 도의 작용 아래 시작되었다. ‘도’는 천지 만물의 본원이며 자연계와 인류 사회의 최고 법칙이다. “큰 덕의 모습은 오직 도를 따를 뿐이다.[孔德之容,惟道是從]” 즉, 자연에 순응하고 무위(無爲)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 만물이 생성되고 발전하는 총근원이라면, 이 속에 이 우주에서 인류보다 높은 생명들의 생성과 발전도 포함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는 이 층의 우주 생명과 인류를 포함한 이 층의 법(法)이 아니겠는가? 인류의 도덕과 행위 규범을 규율하는 최고 법칙이 아니겠는가?
제34장에서 노자는 또 말한다.
“대도는 넓게 퍼져 있어 가히 좌우로 가도다.
만물이 그를 의지해 생겨나되 거절하지 않고,
공을 이루어도 이름을 갖지 않으며,
만물을 사랑하고 기르되 주인이 되지 않으니 작다고 이름할 만하고,
만물이 그리로 돌아가되 주인이 되지 않으니 크다고 이름할 만하도다.
끝내 스스로 크다고 여기지 않기에 그 큼을 이룰 수 있느니라.”
인류가 이 ‘도’의 요구에 따라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일종의 수련이 아니겠는가? 바로 반본귀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노자는 그 답 또한 제시했다.
*반본귀진(返本歸真)의 법
노자는 사회 문명의 발전이 인류로 하여금 명예와 이익을 쫓게 하여 사람들의 심성을 어지럽히고 본연의 참모습을 잃게 했다고 보았다. 인의(仁義), 효자(孝慈), 충신(忠臣)의 등장은 바로 사회 도덕의 패괴를 증명한다. 사회에 불인(不仁), 불의(不義), 불충(不忠), 불효(不孝)의 현상이 존재하기에 비로소 사람들이 인의, 효자, 충신을 갈망하게 된 것이다. 만약 사람마다 서로 사랑하고 정치가 맑고 청렴하다면, 이것들은 평범한 의식주와 같아서 아무도 이를 창도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다시 참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자는 ‘도’를 전했다.
진정한 도는 “세상 사람들이 하늘을 인식하는 도구”다. (“그 밝음을 알고 그 어둠을 지키니 천하의 법식이 된다” 《노자》 28장).
“도는 존귀하고 덕은 귀중하나니,
무릇 시키는 이가 없어도 항상 스스로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도가 이를 낳고 덕이 이를 기르며,
자라게 하고 양육하며, 안정시키고 독을 제거하며, 보살피고 덮어주도다.
낳되 소유하지 않고, 행하되 기대를 품지 않으며, 기르되 주재하지 않는다.”(《노자》 51장)
진정한 도가 가진 위력은 깊어 헤아릴 수 없다.
“혼백을 갈무리하고 하나를 껴안아 가히 떨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를 오로지 하여 부드러움에 이르러 가히 어린아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마음의 거울을 깨끗이 닦아 가히 허물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다스림에 가히 무위로 할 수 있겠는가?
하늘 문이 열리고 닫힐 때 가히 여자의 유연함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밝게 사방에 통달함에 가히 지식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낳고 기르되, 낳아도 소유하지 않고 공을 세워도 뽐내지 않으며
어른 노릇을 하되 주재하지 않으니 이를 현덕(玄德)이라 한다.”(《노자》 10장)
그렇다면 도를 향하는 이들이 어떻게 반본귀진할 수 있는가? 노자의 대답은 이러하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으며,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노자》 25장)
선(善)을 향해야 한다.
노자는 말한다.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물기에 도에 가깝도다.
거처함에는 선한 땅을 택하고, 마음은 선한 연못처럼 깊게 하며,
사귐에는 선하게 어질고, 말함에는 선하게 믿음을 주며,
정치는 선하게 다스리고, 일함에는 선하게 능력을 보이며,
움직임에는 선하게 때를 맞춘다.
오직 다투지 않기에 근심이 없노라.”(《노자》 8장)
“천도는 사사로운 친함이 없으나 늘 선한 사람과 함께한다.”(《노자》 79장)
각종 망념과 욕망, 집착심을 끊고 무위와 청정함을 이루어야 한다. 노자는 말한다.
“다섯 가지 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다섯 가지 음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하며,
다섯 가지 맛은 사람의 입맛을 버리게 하고,
말을 타고 달리는 사냥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하며,
얻기 힘든 재화는 사람의 행실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배를 위할 뿐 눈을 위하지 않으니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노자》 12장)
수련하는 사람은 “성스러움을 끊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의 이로움이 백 배나 될 것이다.
인을 끊고 의를 버리면 백성이 다시 효도하고 자애로워질 것이다.
기교를 끊고 이익을 버리면 도둑이 없어질 것이다.
이 세 가지는 꾸밈으로는 부족하니 소속된 바가 있게 해야 한다.
본바탕을 보고 소박함을 지키며 사사로움을 줄이고 욕심을 적게 하며 배움을 끊으면 근심이 없으리라.”(《노자》 19장)
노자는 도가 있는 자는 “스스로 드러내는 자는 밝지 못하고, 스스로 옳다 하는 자는 빛나지 못한다. 스스로 뽐내는 자는 공이 없고,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오래가지 못한다”라고 여겼다.(《노자》 24장)
수련하는 사람은 “자신을 아는 자가 총명하다. 남을 이기는 자는 힘이 있고, 자신을 이기는 자는 강하다. 만족할 줄 아는 자가 부유하다. 힘써 행하는 자는 뜻이 있다. 그 자리를 잃지 않는 자는 오래가고,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자가 장수한다.”(《노자》 33장)
그리고 “청정함이야말로 천하의 정도(正道)다.”(《노자》 45장) 진정한 수련자로서 세상의 모든 잡념과 욕망을 버려야 한다.
덕(德)을 중시해야 한다. 노자는 무엇이 진정한 도덕인지 지적했다. “상덕(上德)은 덕을 내세우지 않기에 덕이 있고, 하덕(下德)은 덕을 잃지 않으려 하기에 덕이 없다. 상덕은 무위하여 무엇을 하려는 목적이 없으나, 하덕은 무위하려 해도 목적이 있다.”(《노자》 38장)
수련은 또한 굳게 믿어야 한다.
노자는 말한다.
“천지도 오래갈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그러므로 도에 종사하는 자는 도와 하나가 되고,
덕에 종사하는 자는 덕과 하나가 되며,
잃는 것에 종사하는 자는 잃는 것과 하나가 된다.
도와 하나가 된 자는 도 또한 그를 얻음을 즐거워하고,
덕과 하나가 된 자는 덕 또한 그를 얻음을 즐거워하며,
잃는 것과 하나가 된 자는 잃음 또한 그를 얻음을 즐거워한다.
믿음이 부족하면 불신이 있게 된다.”(《노자》 23장)
노자는 고대의 진정한 수련자는
“미묘하고 현통(玄通)하며 깊어 다 알 수 없다.
오직 알 수 없기에 억지로 묘사하자면,
머뭇거리기는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는 듯하고,
주저하기는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듯하며,
엄숙하기는 손님과 같고, 풀리기는 얼음이 녹는 듯하며,
도탑기는 다듬지 않은 통나무와 같고,
텅 비기는 골짜기와 같으며, 섞이기는 흐린 물과 같도다.
누가 능히 흐린 것을 정지시켜 서서히 맑게 하겠는가?
누가 능히 편안한 상태를 움직여 서서히 생겨나게 하겠는가?
이 도를 보존하는 자는 가득 차기를 바라지 않는다.
오직 가득 차지 않기에 능히 해진 것을 새롭게 이룰 수 있느니라.”(《노자》 15장)
이 새로운 사람이 “비움을 극에 이르게 하고 정지함을 두터이 지켜 그 뿌리로 돌아간” 후,
노자는 “고요함을 생명으로 복귀하는 것이라 한다.
생명으로 복귀하는 것을 늘 그러함(常)이라 하고,
늘 그러함을 아는 것을 밝음(明)이라 한다.
늘 그러함을 알면 포용하게 되고,
포용하면 공평해지며, 공평하면 온전해지고,
온전하면 하늘과 같아지며, 하늘과 같으면 도에 이르고,
도에 이르면 영원하여 몸이 다하도록 위태롭지 않다”라고 보았다.(《노자》 16장)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노자》를 읽으면 사람 되는 도리를 알게 된다. 수련하는 사람과 수련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전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추구하지 않고 세상의 총명함이나 능력에 집착하지 않으며 반본귀진을 구하지만, 후자는 정반대로 세상의 모든 이욕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도를 얻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증명한다.
이후의 수련자들 중 노자의 도를 따르는 이들은 모두 세속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몸을 기르고 성품을 닦았기에 험악한 난세에도 역경을 겪지 않았다. 노자의 도는 연원이 넓고 깊으며 원류가 길고 깊으니 이는 건곤(乾坤)이 정한 것이다. 그리하여 훗날 수련하는 이들은 모두 노자를 그들의 종사(宗師)로 받들게 되었다.
도를 지닌 ‘성인(聖人)’
《노자》에는 ‘성인’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한다. 성인은 도와 하나가 된 자이며, 그의 사명은 “세상 사람들이 하늘을 인식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하나를 안고 천하의 법식이 된다” 《노자》 22장).
성인의 행위는 수련자의 본보기다. 성인은 “심한 것을 버리고, 사치스러운 것을 버리고, 교만한 것을 버린다”. 즉 성인은 모든 강구하는 것, 사치스러운 것, 교만한 것을 버린다는 뜻이다.(《노자》 29장)
“성인은 일정한 마음이 없으며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선한 자에게 내가 선하게 대하고 선하지 않은 자에게도 내가 선하게 대하니 덕이 선해진다. 믿음 있는 자를 내가 믿고 믿음 없는 자도 내가 믿으니 덕이 믿음직해진다.
성인이 천하에 처함에 온 마음을 다해 천하의 마음을 혼합하니
백성이 모두 그 귀와 눈을 집중하고 성인은 그들을 모두 아이처럼 대한다.”(《노자》 29장)
노자는 성인의 행위를 묘사함으로써 사람들이 어떻게 사람 노릇을 하고 어떻게 반본귀진하는지를 매우 명확하게 알려주었다. 참으로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도와 인생 및 국가 다스리기
노자는 사람들에게 천지의 법칙은 사람의 의지에 따라 옮겨지지 않으며 만물의 생사는 모두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세상살이 또한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
노자는 또한 “화(禍) 속에 복(福)이 기대어 있고, 복 속에 화가 숨어 있다”라고 지적했다. 즉 화는 복을 만드는 전제이며, 복에는 화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서로 전환될 수 있으며 일정한 조건 하에서 복은 화가 되고 화는 복이 될 수도 있다.
도가의 기본 정치 주장은 무위이치(無爲而治)다. “무위의 일에 처하고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한다.” 즉 국가를 다스릴 때 모든 것을 자연에 순응하고 백성에게 간섭하지 않거나 적게 간섭하는 정책을 취하여, 무위를 수단으로 삼아 이루지 못함이 없는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다.
노자와 공자의 사상 충돌: 유가와 도가의 구별
공자가 일찍이 노자에게 ‘예(禮)’에 관한 학문을 묻고자 먼저 제자 자공(子貢)을 보내 알현하게 했다. 자공을 만난 노자가 말했다. “그대의 스승 이름이 공구(孔丘)라지. 그가 만약 나를 3년 동안 따른다면 그 후에 그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이네.”
공자가 노자를 만나자 노자가 말했다.
“장사를 잘하는 사람은 부유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듯하고,
덕이 높은 군자는 흔히 어리석은 사람처럼 겉으로 드러내지 않소.
그대는 마땅히 그대의 교만함과 과도한 욕망을 조속히 버려야 하오.
이런 것들은 그대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오.”
노자가 공자에게 무슨 책을 읽느냐고 묻자, 공자는 《주역(周易)》을 읽고 있으며 성인들도 모두 이 책을 읽는다고 답했다. 노자가 말했다. “성인이 그것을 읽는 것은 괜찮으나 그대는 왜 그것을 읽소? 이 책의 정수가 무엇이오?”
공자가 “정수는 인의(仁義)를 선양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자 노자가 말했다. “이른바 인의라는 것은 헛되이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이오. 마치 밤에 물어뜯어 잠을 못 자게 하는 모기와 같아서 사람들에게 혼란과 번뇌만 더해줄 뿐이오.
보시오, 저 고니는 매일 깃털을 씻지 않아도 절로 희고, 까마귀도 매일 먹칠을 하지 않아도 절로 검소. 하늘은 본래 높고 땅은 본래 두터우며, 해와 달은 본래 빛을 내뿜고 별들은 본래 질서 있게 배열되어 있으며 초목은 태어날 때부터 구별이 있소. 그대가 만약 도를 닦는다면 자연히 존재하는 법칙에 순응하시오. 그러면 자연히 도를 얻을 것이오. 그런 인의 따위를 선양해서 어디에 쓰겠소? 그것은 북을 치며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과 같이 가소롭지 않소? 그대는 자연의 법칙을 파괴하고 사람의 천성을 망치고 있소!”
노자가 다시 공자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미 도를 얻었소?”
공자는 “제가 27년을 구했으나 여전히 얻지 못했습니다”라고 했다.
노자가 말했다.
“만약 도가 형체가 있어 사람에게 바칠 수 있는 것이라면 사람들은 다투어 이를 임금에게 바쳤을 것이오. 만약 도를 남에게 줄 수 있다면 사람들은 이를 친척에게 주었을 것이오. 만약 도를 명확히 말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모두 자기 형제에게 말해주었을 것이오. 만약 도를 남에게 전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다투어 자기 자녀에게 전했을 것이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들은 모두 불가능하오. 이유는 간단하오. 한 사람의 마음속에 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다면 도는 절대로 그 마음속에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오.”
공자가 말했다. “저는 《시경》, 《서경》, 《주례》, 《주악(周樂)》, 《역경》, 《춘추》를 연구하고 선왕의 치국지도를 강설하며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의 성공 경로를 깊이 밝혀, 이를 가지고 70여 명의 군주를 만났으나 제 주장을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설득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노자가 말했다.
“그대의 ‘육예(六藝)’는 모두 선왕 시대의 낡은 역사일 뿐인데 그것을 말해 어디에 쓰겠소? 그대가 지금 닦는 것도 모두 낡은 것들이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신발을 신고 남긴 자국과 같소. 발자국과 발자국 사이에 무슨 다른 점이 있겠소?”
공자는 노자에게서 돌아와 사흘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자공이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만약 어떤 이의 사고가 날아다니는 새처럼 거침없다면 나는 화살처럼 정확하고 날카로운 논점으로 그를 쏘아 굴복시킬 수 있다. 만약 상대의 생각이 고라니처럼 분주하게 달린다면 나는 사냥개로 추격해 내 논점으로 굴복시킬 수 있다. 만약 상대의 생각이 깊은 연못 속의 물고기처럼 노닌다면 나는 낚시로 그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상대의 생각이 용처럼 구름과 안개를 타고 태허의 환상 속을 노니며 형체도 그림자도 없어 포착할 수 없다면 나는 추격하거나 잡을 방법이 없다. 내가 노자를 만나보니 그의 사상 경계는 마치 태허 속을 노니는 용과 같아서, 나는 입만 벌린 채 말을 못 하고 혀를 내밀었다가 다시 거두지도 못했다. 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이미 나 자신을 찾을 수 없구나.”
이것이 바로 사람을 제도하는 각자(覺者)와 세상 속 사상가의 근본적인 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