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양연소 전기】 오랑이 하산해 요군 격파 (하)

앙악(仰嶽)

【정견뉴스】

양연소 전기──오랑이 산을 내려와 요군을 격파하다. 삽화. [청옥(淸玉)/에포크타임스]

백천조가 사도(邪道)에 빠지다

양오랑이 다시 말했다.

“나는 이미 정식으로 출가했으니 도적을 토벌하고 사찰과 신도를 지키는 일 외에는 더는 전쟁터의 일을 묻지 않겠다. 사실 여섯째가 전에도 이미 여러 번 서신을 보내고 맹량과 초찬을 보내 나를 산 아래로 청했으나 모두 거절했다. 하물며 이 산에는 겨우 수백 명의 무술 승려뿐인데 어찌 요나라 5만 대군을 대적하겠느냐?”

말을 마친 그는 소매를 떨치며 몸을 날려 정자 뒤 산 위로 올라갔다. 팔매가 급히 뒤쫓아 산을 올랐으나 오랑의 신법이 워낙 빨라 금세 자취를 감췄다. 팔매는 할 수 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 “오빠! 저와 함께 산을 내려가지 않으신다면 이 절을 불태워버릴 거예요!”

팔매는 말을 마치고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정문 근처에 이르러 웅장하고 장엄한 고찰을 보니 차마 손을 댈 수 없었다.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다 보니 풀로 엮은 초막 두 채가 보였는데, 산을 오르는 신도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 같았다. 그녀는 부싯돌을 쳐서 불을 붙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초막 두 채가 타오르며 매연이 하늘을 찔렀다.

잠시 후 양오랑이 무승들을 데리고 산을 내려왔다. 오랑이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자 순식간에 초막이 무너졌고, 승려들이 막대기로 풀과 나무를 헤치거나 물을 길어와 불을 끄니 순식간에 불길이 잡혔다.

오랑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팔매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어찌 이리 고집을 피우느냐, 이미 다 알아듣게 말하지 않았느냐!”

팔매가 대답했다.

“저 요나라 장수 토행승은 보통 사람이 아니에요. 군사를 거느리고 진을 칠 뿐만 아니라 요술까지 부려요. 저와 육랑 오빠가 그의 무공 초식이 오빠와 똑같다는 걸 발견하고 이상해서 여기 찾아온 거라고요!”

오랑은 깜짝 놀라 물었다.

“토행승이라고? 그가 어떻게 생겼더냐? 어떤 진법을 펼치더냐?”

양팔매는 토행승과 삼관에서 싸운 일과 진을 쳐서 송나라 군대를 포위한 상황을 낱낱이 이야기했다.

오랑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대답했다.

“그자가 어찌 토행승이겠느냐. 내가 보기에 그놈은 십중팔구 배신자 백천조가 분명하구나. 감히 내가 가르친 구룡팔괘진(九龍八卦陣)을 써서 우리 대송(大宋)을 공격하다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구나!”

오랑은 이어 지난 과거를 들려주었다.

백천조는 원래 대송 장수 가문의 후손이었으나, 아버지와 형이 조정 권신들에게 모함을 받아 세상을 떠나자 생활고에 시달리다 도적이 되었다. 이후 인연이 닿아 오대산에서 출가하여 무승이 되었다. 그는 천성이 총명하고 무예가 뛰어났으며, 같은 장수 가문의 후손인 양오랑과 처지가 비슷해 서로 친하게 지냈다. 양오랑은 그에게 자신이 가진 무예와 진법을 아낌없이 전수해주었다.

그러나 백천조는 출가했음에도 명예와 이익, 재물과 색욕을 버리지 못했고, 급기야 몰래 산을 내려가 이웃 마을 여인과 사사로이 만나다 색계(色戒)를 범해 문중에서 쫓겨났다. 절을 떠난 백천조는 노여움을 품고 서역으로 달아나 마교(魔敎)에서 사악한 법술을 배웠다. 이후 대요(大遼)에서 인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광명을 버리고 어둠으로 들어가 이름을 토행승으로 바꾸고 요나라 대장이 된 것이다.

양오랑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의 무예는 내가 가르친 것이니 내가 산을 내려가 그 악행을 막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요나라 대군을 상대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많은 살업을 짓게 될 터인데, 내가 산에 오른 본래 뜻이 가문의 죄를 씻기 위함이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그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할 때 지총 선사가 나타나 말했다.

“오랑아, 깨닫거라! 네가 처음에 산에 오른 것은 양가 가문의 죄를 씻기 위해 전심으로 부처 수련을 하며 죄업을 화해하려 함이었다. 가부좌를 틀고 경을 읽는 것도 죄업을 없애는 길이지만, 무승으로서 백성을 지키는 것 또한 어찌 죄업을 씻는 일이 아니겠느냐?”

양오랑이 대답했다.

“제자도 알고 있습니다. 다만 부친과 형제들의 전철을 밟을까 두려워 승려들을 이끌고 도적을 소탕하고 백성을 지키는 일에만 전념해왔습니다. 그동안 조정에서 보낸 사람들을 거절한 것도 세상일에 너무 깊이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지총이 대답했다.

“네 부친과 형제들은 비록 평생 전장을 누비며 수많은 사람을 죽여 흉하게 죽었으나, 한마음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했으니 마치 삼국시대 명장 관우나 장비가 죽어서 신(神)이 된 것과 같다. 반면 전국시대 진의 장수 백기(白起)는 명리를 위해 싸워 항복한 무고한 병사 40만을 구덩이에 묻어 죽였기에 천여 년간 삼악도(三惡道)를 윤회하고 있다. 요나라 군대와 싸우며 서로 다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니, 옛날 대당의 황제 이세민이 적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소림사 열세 명의 곤승(棍僧)이 그를 구한 적이 있다. 그들이 성주(聖主)를 도와 천하를 평정하고 전란에 고통받는 백성을 구한 의로운 거동 또한 어찌 수행이 아니겠느냐? 살업(殺業)을 짓는 것은 단지 천의(天意)에 따른 조화일 뿐이다. 지금 네 여섯째가 요나라 군에 포위되어 만여 장병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고, 요나라 주장이 너와 연원이 깊으니 네가 산을 내려가 이 난국을 해결하는 것은 의리상 거부할 수 없구나.”

지총 선사는 말을 마친 후 오랑에게 보따리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이것은 네가 처음 산에 올 때 보따리에 싸 왔던 큰 도끼다. 당시 네가 속세의 마음을 내려놓지 못할까 걱정되어 거두어두었으나, 이제 네 수행이 족하니 다시 이것을 사용할 때가 되었다.”

양오랑이 대답했다.

“삼가 사부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오랑이 산을 내려와 요군을 격파하다

얼마 후 양오랑은 승려들을 소집해 무승 500명을 선발했다. 그들은 말을 타고 위풍당당하게 산을 내려왔다. 팔매를 따라 동쪽으로 달려 곧 관외의 진지에 도착했다. 때는 밤이었는데, 무승단은 속도가 매우 빠르고 소리조차 없어 순식간에 요나라 군의 방어선을 넘어 송나라 군영에 이르렀다.

양연소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형님을 보고 격한 감정에 눈시울을 붉혔다. 두 사람은 서로 껴안으며 마치 꿈만 같은 재회를 나누었다. 이어 양연소는 장수들을 불러 적을 물리칠 대책을 논의했다.

양연소가 말했다.

“아버님께서 생전에 남기신 《육갑병서(六甲兵書)》 세 권 중 저는 상권과 중권만 정통할 뿐, 하권은 너무나 심오하고 어려워 조금밖에 알지 못합니다. 요 며칠간 탐색해보니 저들의 진형(陣形)은 하권에 기록된 구룡팔괘진(九龍八卦陣)이 틀림없습니다. 전투에 임해 진을 치는 실력은 형님의 수행이 저보다 위이시니, 이번 진을 깨뜨리는 일은 형님의 도움을 받아야겠습니다.”

양오랑이 말했다.

“여섯째야, 과찬의 말이다. 《육갑병서》 하권은 나도 겨우 절반 정도밖에 통달하지 못했다. 탐색한 진형을 보니 허점이 있더구나. 육제(六弟)가 장수들을 거느리고 용의 머리, 배, 꼬리 등 여러 곳을 나누어 공격하거라. 반드시 먼저 용의 눈에 해당하는 두 석탑을 파괴해야 한다. 그 후 일제히 전진해 진을 깨뜨리자꾸나. 나는 500 무승을 이끌고 제단으로 달려가 백천조를 잡고 그의 요술을 깨뜨릴 것이니, 그리하면 반드시 대승을 거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양연소와 맹량, 초찬, 왕란영, 양팔매가 각각 병력을 이끌고 공격을 시작했다. 양연소와 왕란영은 양측에서 먼저 용의 두 눈을 향해 돌격하여 석탑에 불을 질렀다. 이어 장수들이 차례로 진 안의 용 몸통 각 부위를 공격하며 수비하는 요나라 군대와 격전을 벌였다.

백천조는 상황이 급박해지자 급히 제단에 올라 법술을 부렸다. 그러자 갑자기 짙은 안개가 끼고 모래바람이 일었다. 그러나 양오랑의 무승단은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 전진했다. 오랑은 말에서 뛰어내려 큰 도끼를 일직선으로 내던졌다. 도끼는 마치 포탄처럼 제단으로 날아가 향로를 박살 냈고, 짙은 안개와 모래바람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양오랑이 꾸짖었다.

“백천조! 이 배신자 놈아! 색계를 범해 문중에서 쫓겨나고도 뉘우칠 줄 모르고 사도(邪道)

에 빠져 나라를 배반하고 적에게 투항하다니. 지금이라도 항복하여 만회할 기회를 얻거라. 절대로 잘못을 거듭하지 마라!”

백천조가 대답했다.

“사형! 온종일 무예를 닦고 부처 수련을 하는 게 무슨 재미란 말이오. 결국은 허무하게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지! 세상에는 부귀영화가 널렸는데 어찌 즐기지 않겠소! 사형의 본래 재주가 아까우니 나를 따라 대요에 투항한다면 평생 공명과 이록을 누리게 해주겠소!”

양오랑이 대답했다.

“네가 향락만 탐하다 마도(魔道)에 빠졌으니, 훗날 지옥의 고통을 톡톡히 맛보게 될 것이다! 어서 머뭇거리지 말고 마음을 돌려야 만회할 여지가 있다.”

백천조가 다시 대답했다.

“사형은 참으로 고지식하구려. 당신 양가(楊家) 식구들이 일심으로 위아래가 나라에 충성해서 얻은 게 대체 무엇이오? 조정의 어리석은 군주는 간신을 총애하여 당신 가문을 멸시하는데, 대요의 소태후께서는 인재를 알아보시고 나를 파격적으로 병마대장군에 임명하셨소. 삼관만 깨뜨리면 만금의 상과 왕후의 자리를 주기로 하셨으니, 사형은 차라리 육제를 설득해 나에게 귀순하여 함께 부귀영화를 누립시다.”

양오랑이 대답했다.

“우리 양가가 고난을 겪는 것은 천의에 따른 조화이나, 네가 스승을 배반하고 요나라에 투항한 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짓이다. 네가 이토록 미련하게 구니 오늘은 내가 문중의 규율을 바로잡겠다.”

백천조는 도끼를 휘둘러 오랑이 던져 제단에 박힌 도끼 자루를 끊어버렸다. 이어 요나라 장병들에게 무승들을 포위하라고 명령했다. 무승들은 나무 막대기를 꺼내 들고 말에서 내려 진형을 갖추고 요나라 군사와 맞섰다. 나무 막대기는 살상력은 병기보다 못했으나 매우 민첩하고 교묘해 정규군과의 대전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양오랑은 포위를 뚫고 제단으로 달려가 백천조를 노렸다.

백천조는 무기를 쥔 것을 믿고 도끼를 휘두르며 응수했다.

“당신 무기는 부서졌는데 나를 어쩌겠소?”

양오랑은 대꾸도 없이 막대기로 정면 대응했다. 번개처럼 빠르게 수십 개의 초식을 내뻗으니 순식간에 백천조의 두 팔에 여러 대의 매가 꽂혔고 하마터면 무기를 놓칠 뻔했다. 백천조의 도끼가 날카로웠으나 상대에게 닿지 못했다. 오랑의 막대기 술법은 정묘했고 초식은 팔괘처럼 변화무쌍하여 수십 합 만에 백천조는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격전 중에 막대기가 마치 신령스러운 뱀이 굴에서 나오듯 백천조의 옆구리를 강타했고, 그는 비명을 지르며 수 척 밖으로 튕겨 나갔다.

밀리게 된 백천조는 지지 않으려 요술 절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주문을 외우자 현장에 음산한 바람이 불며 주변의 송나라 장병들이 쓰러져 전의를 상실했고, 쓰러졌던 요나라 장병들이 좀비처럼 일어나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오랑은 이를 보고 즉시 무승단과 함께 불문의 경문과 주결을 외우며 정념(正念)을 품었다. 그러자 갑자기 불광(佛光)이 온 누리를 비추며 금빛이 찬란하게 빛났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요사스러운 기운은 점차 흩어져 사라졌고, 쓰러졌던 송나라 장병들이 깨어났으며 좀비 같던 요나라 군사들은 다시 쓰러졌다.

요술이 실패하자 백천조는 노발대발하여 양오랑과 무승들에게 사악한 기운을 쏟아부었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백천조는 갑자기 선혈을 토하며 쓰러졌는데, 사악한 법술에 타격을 받은 듯했다.

이때 양연소와 장수들이 진형을 완전히 깨뜨리고 합공해왔다. 요나라 장수 유가, 마리, 나호 등은 주장이 쓰러지고 진형이 무너지자 승산이 없음을 깨닫고 퇴각하기로 했다. 요나라 군은 힘겹게 백천조를 구해내고 철갑 기병을 뒤에 배치해 퇴각했다. 결국 이번 전투도 송나라 군의 대승으로 끝났다.

전투가 끝난 후 양연소는 군사들에게 요나라 군의 시설물을 파괴하게 하고 삼관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떠나기 전 그는 오랑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양오랑이 말했다.

“백천조는 이미 사악한 법술의 반동을 입었으니 죽지 않더라도 앞으로 주문을 외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저 그가 잘못을 깨닫고 돌아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삼관과 오대산은 거리가 멀지 않으니 큰 전투가 있으면 다시 나를 찾아오너라.”

말을 마친 그는 무승단을 이끌고 산으로 돌아갔다.

이후 양오랑은 오대산에서 수련했으나 송나라와 요나라의 전황이 위급할 때면 가끔 무승을 이끌고 산을 내려와 구원하곤 했다. 그는 무예를 깊이 연구하여 오랑팔괘곤(五郎八卦棍)이라는 절기를 만들어 세상에 남겼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송 휘종 정화(政和) 연간까지 살아 160여 세의 장수를 누렸으니, 양가 자손 중 가장 장수한 인물로 남게 되었다.

참고자료:
《楊六郎威鎮三關口》河北人民出版社1984年出版 趙福和 李巨發 等人 搜集
《楊家將外傳》河北少年兒童出版社 1986年出版 趙雲雁 搜集整理@*

(에포크타임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