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話本先笙)
【정견망】
“여소요! 국어 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라고 하셔!” 손가녕(孫佳寧)이 7반 문앞에서 소리쳤다.
반에 앉아 있던 여소요가 물었다.
“무슨 일인데?”
“몰라.”
여소요는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가려다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말했다.
“참, 가녕아. 내 수학 시험지 좀 가져다줘. 그날 너희 반 수학 선생님이 빌려 가셨거든. 너희 반 임풍 보여준다고 하셨는데, 네가 좀 받아다 줘.”
손가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알았어.”
여소요는 국어 교무실로 들어갔다. 전 학년 10개 반에 다섯 명의 국어 선생님이 있었는데 모두 한 교무실을 쓰고 있었다.
“선생님, 저 부르셨어요?”
그녀가 온 것을 들은 국어 선생님은 뒤를 돌아보더니 책상에 손을 괴고 다시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보충 수업 좀 해주려고 불렀다. 네 국어 성적이 통 오르질 않는구나.”
“선생님, 선생님 치아는 원래 그렇게 노란색인가요?” 여소요가 물었다.
“아이고, 차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렇단다.” 국어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 담배 좀 줄이시는 게 좋겠어요.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담배 냄새가 나요.” 여소요가 말했다.
“에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이리 와봐! 네가 쓴 이 작문 좀 보렴. 800자 억지로 채운 거지?” 국어 선생님이 물었다.
여소요는 어색하게 웃었다.
“헤헤.”
……
“어라? 내 명찰 다는 자리에 왜 자꾸 빨간 점이 생기지? 꼭 피 얼룩 같네.” 여소요가 교복을 보며 말했다.
여소요는 매일 삶의 의욕이 없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는 짝꿍을 바라보며 물었다.
“노우, 너 자꾸 내 명찰로 뭐 하는 거야?”
노우는 차갑게 비웃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살인.”
여소요가 교복의 붉은 점을 보여주며 물었다.
“봐봐, 이거 피 아니야?”
노우는 고개를 떨군 채 묵묵히 왼쪽 팔소매를 걷어 올렸다. 여소요는 눈을 크게 떴다.
노우의 왼쪽 팔 전체가 긁힌 자국으로 가득했다. 이 상처들은 바로 명찰 뒤에 달린 옷핀으로 긁은 것이었다. 어떤 것은 이미 딱지가 앉았고, 어떤 것은 흉터가 되었으며, 어떤 것은 아직 새 상처였다.
이것들은 평범한 흉터가 아니라 글자 하나하나였다.
“한(恨), 한, 한……”
독백:
당시 우리 학교에서 이런 자해 행위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많은 학생이 자해를 하곤 했다. 즉 스스로 자신의 몸을 해치는 것이다.
혹은 칼로 베거나, 혹은 바늘로 긁었다.
왜냐하면 형체 없는 고통을 형체 있는 고통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육체의 고통은 정신적인 고통을 완화해 줄 수 있었다.
노우는 ‘특이한 사례’가 아니라 그저 흔한 ‘일반적인 사례’일 뿐이었다.
……
“노우! 너무 많이 긁었잖아! 다른 애들은 기껏해야 한두 글자 새기던데, 넌 어떻게 팔 전체를 다 망가뜨려 놨니? 얼마나 아프겠어!” 여소요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소요는 전에도 몇몇 친구들의 자해 행위를 본 적이 있었다. 팔에 커터칼이나 명찰 뒤의 옷핀으로 글자를 새기는데, 피가 낭자해서 보기만 해도 아파 보였다. 노우의 경우는 좀 심각한 편에 속했다.
오후 수업이 끝난 뒤, 여소요는 인솔 선생님께 선생님의 시험지 채점을 도와드려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저녁 식사에 빠졌다.
노우는 통학생이라 방과 후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여소요와 노우는 방과 후에 일단 집에 가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녀는 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교실에는 노우와 여소요 둘뿐이었다.
“왜 그렇게 네 몸을 해치는 거야? 안 아파?” 여소요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노우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우리 엄마가 우리 학교 선생님이랑 바람이 났어. 내가 목격했거든. 한두 번이 아니야.”
“뭐라고?! 어떤 선생님인데? 아빠는?”
“중학교 3학년 화학 가르치는 왕해(王海). 아빠는 모르지만, 아빠도 밖에서 만나는 여자가 있어.”
“왕해? 모르겠는데.”
“그 커다란 안경 쓰고 대머리에 항상 분홍색 셔츠만 입고 다니는 노인네 있잖아.”
“아아, 알겠다.” 여소요는 그런 선생님이 있었던 것 같아 기억을 떠올렸다.
“하지만 노우야, 그건 네 엄마 문제지 너랑은 상관없잖아.” 여소요가 말했다.
“난 지금 그냥 기다리는 거야.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이 집을 떠날 때까지 말이야. 내 팔 좀 봐, 이 수많은 한(恨)들을.” 노우는 마치 감상하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의 팔을 바라보며 말했다.
“더는 긁지 마! 그럴 필요 없어, 정말이야!” 여소요가 그를 위로했다.
노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이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팔을 좀 잘 관리해야겠어. 안 그러면 어떻게 연애를 하겠니? 내 팔을 보면 다들 겁나서 나랑 안 사귀려 할 거야.”
“누군데?” 여소요가 물었다.
“4반 여학생이야.”
“누구냐면……”
……
“손가녕! 너도 여기 있었네!” 여소요는 영어 교무실 문앞에서 손가녕을 보았다.
“쉿!” 손가녕이 여소요에게 조용히 하라는 몸짓을 했다.
여소요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
손가녕은 교무실 안쪽을 가리키며 작게 말했다.
“소왕흠(小王鑫)이 영어 숙제를 안 해서 안에서 맞고 있어!”
‘소왕흠’이 누구인가 하면, 5반 남학생인데 키가 크고 잘생겼다. 왜 소왕흠이라고 부르느냐면 왕흠이라는 이름이 흔해서 5반에 왕흠이 또 있었기 때문이다. 그쪽이 나이가 더 많아서 ‘대왕흠(大王鑫)’이라 불렀고 이쪽은 ‘소왕흠’이었다.
여소요는 원래 영어 선생님께 숙제를 제출하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안에서 누군가 맞고 있다는 말을 듣자 손가녕처럼 문앞에 숨어서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소왕흠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기다리다 보니 뜻밖에도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소왕흠이 웃는 것인가? 맞다, 그는 웃고 있었다. 어라? 선생님은 왜 같이 웃는 거지?
두 사람이 문틈으로 안을 엿보니, 영어 선생님이 소왕흠의 허리를 껴안고 손으로는 소왕흠의 갈비뼈 쪽 살을 꼬집으며 얼굴을 소왕흠의 등에 바짝 대고 있었다. 얼굴이 발그레해진 채 음란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소왕흠도 웃고 있었다.
“아파, 안 아파? 아프니?…… 하하하…… 아파?” 영어 선생님은 살짝살짝 꼬집으며 그의 허리를 감싸고 물었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은 마치 발정 난 암컷 원숭이 같았다.
“간지러워요! 간지러워요! 간지럽다니까요…… 선생님…… 하하하!” 소왕흠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이 장면을 본 손가녕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여소요에게 말했다.
“괜찮아, 선생님 화 안 나셨네. 우리 들어가자.”
“응, 가자.”
……
독백:
당시 우리 영어 선생님은 나이가 많지 않은 여성이었는데, 키 크고 잘생긴 남학생들과 장난치고 희롱하며 신체 접촉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남학생들은 그녀를 꽤 좋아했고 우리도 그녀를 싫어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녀는 우리를 때릴 때 아주 살살 때렸으니까.
……
“소요야, 명절인데 선생님들께 차 한 통씩 드려라.” 아빠가 소요에게 말했다.
“네.”
소요는 그 차들을 살펴보았다. 그중 용정차(龍井茶)가 한 통 있었는데, 국어 선생님이 항상 용정차를 마시던 것이 기억나 그 용정차를 국어 선생님께 드리기로 했다.
“선생님,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이거 받으세요.”
“오! 내가 용정차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니!”
“네, 선생님 책상 위에 늘 용정차가 있는 걸 봤거든요.”
국어 선생님은 싱글벙글 웃으며 여소요에게 말했다.
“너 평소에도 선생님한테 관심을 두고 있었구나, 그렇지?”
“네?” 여소요는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너 선생님 좋아하니?” 국어 선생님이 물었다.
“좋아하죠.” 여소요가 대답했다.
“그래, 가보렴. 고맙다.” 국어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여소요는 어리둥절한 채 자리를 떴다.
……
“여소요, 너 4반 여학생 중에 아는 애 있어?” 노우가 물었다.
“4반 송정(宋晴)을 알아. 우리 둘이 토요일에 같은 학원에서 영어 배우거든.” 여소요가 말했다.
“잘됐다!” 노우가 기뻐하며 말했다.
노우는 책상 서랍에서 카드 편지 한 통을 꺼내 살며시 여소요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거, 토요일에 수업할 때 송정한테 좀 전해줘. 송정더러 내가 좋아하는 그 여자애한테 전해달라고 해줘.”
여소요는 입술을 깨물며 미소 지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연애편지를 전달해 주는 이런 일이 퍽 재미있다고 느꼈다. 그녀는 그 연애편지를 소중히 아껴서 잘 쓰지 않는 책 사이에 끼워 몰래 책가방에 넣었다.
……
여소요가 다니는 영어 학원에는 10여 명의 아이가 있었는데, 두 명당 책상 하나를 썼다. 송정과 소영이 한 책상을 썼다.
“송정아, 이리 와봐.” 학원이 끝날 때 여소요는 그 편지를 송정에게 주었다.
“우리 반 노우가 준 거야, 너희 반 그……”
“아, 걔? 키도 작고 별로 안 잘생겼잖아! 걔가 눈에 차겠어?” 송정이 경멸하듯 말했다.
여소요가 중간에서 거들어 주었다.
“그래도 괜찮아, 못생기진 않았어.”
“난 그런 애 싫어. 난 키 큰 애가 좋은데……” 송정이 말했다.
곁에 있던 여학생 몇 명이 야유하며 말했다.
“호수천(胡帥天)이 키 크잖아! 쟤는 호수천 좋아해!……”
“저리 가! 너희들 정말 얄미워 죽겠어!” 송정은 쑥스러워하며 그녀들과 웃고 떠들며 장난을 쳤다.
“여소요! 너는 누구 좋아해?” 한 여학생이 물었다.
여소요가 농담으로 대답했다.
“너 좋아해!”
“그럼 너 동성애자구나! 하하하!”
“우리 소요는 모범생이라서 연애 같은 거 안 할걸?” 송정이 말했다.
여소요는 살짝 웃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과연 여소요는 어릴 때부터 모범생이었고 성적도 우수했으며 자제력도 강해 연애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
하지만 사람의 일생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험악한 속세를 떠돌며 또 어떤 급류와 험난한 여울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
밤에 꿈속에서 그녀는 뜻밖에도 구(舊) 신(神)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녀는 이제 겨우 열세 살인데, 정말 그렇게 할 셈인가?”
“왜? 그러면 안 되나?”
“이건…… 이건…… 너무 가혹하네.”
“허, 그녀가 늘 딸의 정결한 본색을 지키는 영웅이라고 자처하지 않았나? 자신을 지키는 것 정도는 문제없겠지?”
“이건…… 이건…… 그녀의 사부가 동의하실까?”
“그녀에게 지금 사부가 어디 있나? 그녀의 머릿속에 어디 법(法)이 남아 있기나 한가?……”
……
여소요는 꿈에서 깨어나 훌쩍 일어났다.
“왜 그러니? 악몽이라도 꿨어?” 엄마가 물었다.
“그들이 나를 해치려 해요! 나를 해치려 한다고요!” 여소요가 공포에 질려 말했다.
“누가 너를 해친다는 거니?” 엄마가 물었다.
“몰라요…… 몰라요, 악몽이에요, 악몽.” 여소요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아마 최근에 공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그럴 거야. 괜찮으니 다시 자거라.” 엄마가 위로했다.
“네.” 여소요는 다시 잠이 들었다……
이번 꿈속에서 그녀는 먼지 쌓인 사진 한 장을 보았다. 그녀는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 집에 모셔두었던 법상(法相) 한 분인 것 같았다……
일요일 아침.
“정화(靜華), 나 먼저 가요.” 아빠가 외출하기 전 엄마에게 말했다.
“네, 갈비랑 생선 잊지 말고 챙겨가요.” 엄마가 말했다.
“챙겼어! 다녀올게!” 아빠가 문을 나섰다.
“소요야! 일어나라!” 엄마가 소리쳤다.
여소요는 바로 일어나지 않고 이 두 번의 이상한 꿈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오늘 점심은 할머니 댁에서 먹고, 밥 먹고 나서 너는 바로 학교로 가거라. 아빠는 먼저 가셨고 엄마가 정리하고 나면 우리도 가자. 서둘러라.” 엄마가 말했다.
소요가 세면을 마친 뒤 엄마도 방 청소를 끝냈고, 두 사람은 함께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소요가 물었다.
“엄마, 나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사진 한 장 모셔두지 않았어요? 사진 속에 기공사 한 분이 계셨던 것 같은데.”
정화는 갑자기 긴장하더니 주위를 둘러보고는 곧바로 단호하게 소요에게 말했다.
“아니! 그런 적 없어!”
그러고는 조금 머뭇거리며 덧붙였다.
“음…… 모신 적 없을 거야, 없을걸……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인데, 난 기억 안 난다.”
“정말 없어요?” 여소요가 다시 물었다.
엄마는 대답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소요야! 봐라! 네가 제일 좋아하는 저 아이스크림 하나 사줄까?”
이야기는 그렇게 흐지부지 넘어갔다.
그들은 할머니 댁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지난 2년 동안 반신불수가 된 데다 치매까지 앓고 있어 자주 헛소리를 하셨다.
“홍위병! 홍위병! 홍위병이 왔다! 족보! 족보! 빨리 태워! 빨리 태워! 조상 위패! 다 태워! 다 태워……”
여소요는 침대에 누워 있는 할머니가 멀쩡한 손가락으로 텔레비전을 가리키며 헛소리를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텔레비전에서는 항일 드라마가 방영 중이었는데, 배우들이 ‘해방군’을 연기하며 모자에는 붉은 오각형 별을 달고 있었다.
여소요는 할머니가 너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그녀는 그만 하하 대소하고 말았다.
“하하하…… 할머니!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다가와 말씀하셨다.
“소리 지르지 마!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도 홍위병 타령이야!”
“아버님, 어머니 좀 일으켜주세요. 식사하시게요.”
……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140
